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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약시 May 09. 2021

너가 이렇게 아픈날이 다시는 오지 않길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던 3일

너가 심각하게 아팠던 그날이 생각난다. 괜찮아진지 3주가 지나간 이 시점에 왜 그생각이 나는지 모를일이다. 아마도 너가 그렇게까지 아팠던 날이 처음이기 때문이겠지.


평소같이 일어난 그날 아침. 너가 쓰러져 응급실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그 순간부터 난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너가 어떻게 어디가 얼마나 아픈건지 너무나 맘이 아파 꼭 보고 말겠다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 너가 있다는 병원에 달려갔다. 그래도 그 와중에 너가 날 보고 혹시나 걱정할까봐 멀쩡한 차림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어떤 날보다 깔끔히 입고갔었다는걸 알까?


그렇게 허겁지겁 대중교통을 타고 가면서 내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나의 거리가 먼 만큼, 그 시간이 출근시간이었던 만큼 당연히 대중교통을 타고가는게 빠른데도 무섭다는 이유로 차 하나 끌고가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하고 응급실로 가면서 그냥 너가 멀쩡하기만을 바랬다. 그때 알았다. 너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사실 8년이 지나면서 너와 나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 무뎌졌던 부분도 있었다. 너무 당연하니까 더 이상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그런순간이 점점 잦아졌으니까. 그래서 나에게 벌을 준건가 생각했다. 8년이라는 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준 너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니까 하늘이 나에게 준 그런 벌인가 했다. 그래서 그냥 멀쩡하게만 살아달라고 빌었다. 사실 멀쩡하게 살아있는게 가장 힘든일인데 그걸 해달라고 빈 내 자신한테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 생각을 할 정신조차 없었으니까 그냥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계속해서 빌었다.


그리고 긴급수술이 끝나고 나온 너가 장난스레 건넨말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너가 살아있었고 그 말에 모든 의미를 느꼈다. 그때 또 느꼈다. 8년의 세월은 무섭구나. 너가 건넨 말 한마디에 그 모든 뜻을 알아버린 내가 웃겨 피식 웃고말았다. 그리고 너도 웃는다. 서로를 보며 웃는 우리를 보며 너의 동생은 어이없다는듯 우리 둘을 바라보고 그 모습이 또 웃겨 우리 둘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 너는 또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로 가면서 간호사분은 직계가족을 찾았다.


그때 알았다. 너와 나는 그냥 우리 둘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든 순간에 나는 아무 힘이 없었다. 그냥 보호자가 필요한 모든 순간에 너의 동생을 불러 줄 수만 있었다. 책임없는 사이라는게 이런거구나를 느꼈다. 우리가 서로에게 자유로운 만큼 나와 너는 서로를 책임져 줄 수 없다는걸 느꼈다. 그래서 다들 결혼을 하는구나. 이런 무기력한 순간을 느끼기 싫어서 결혼을 한다는걸 또 한번 느낀다.


그렇게 너는 중환자실로 들어갔고 너의 동생은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너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것.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는 영영 손과 다리를 못쓸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상황에서 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이 어떻게 온지 모르겠다. 무리해서 회사에 출근했다. 가만히 집에 있으면 정말 그 생각에 집중하게 되서 아무것도 못할 나라는걸 알아버렸으니까. 그리고 너가 언제 회복될 지 모르는데 그 문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 회사에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하기에는 너와 나는 아무사이도 아니었다. 그렇게 회사에 출근해서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날 저녁 나의 상태가 이상함을 느낀 회사언니는 나와 같이 있어주었다.


그때 너에게 전화가 왔다.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그 말을 듣고 나는 참고있던 울음이 터졌다. 근데 생각보다 오열하지는 않게 되더라. 그냥 너가 이제 정말 멀쩡히 살았다는 안도감때문일까 그냥 웃음이 터졌다. 회사언니는 생각보다 울지 않는다고 나를 놀렸다. 그 놀림마저 기쁜 순간이었다.


그렇게 3주가 흘렀고, 너는 퇴원을 했고, 아직도 남아있는 잔병에 곤혹을 치르기 일쑤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회복해가는 너의 모습을 보며 행복하다. 그저 너가 멀쩡히 내 곁에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너는 시덥잖은 소리를 하며 허허거린다. 나도 그 옆에서 아무렇지 않은듯 허허거리며 웃는 이 쓸데없고 쓸모없는 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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