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다 보면 오래 다니는 사람들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직급은 그다음이다. 창립 때부터 존재한 사람들은 비록 부장, 차장이더라도 전무, 상무보다 더 잘 나갈 때가 있다. 군대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니 사기업인 회사라고 다를 게 있을까. 특히 우리 회사같이 작디작은 회사라면 더욱더 심하지 않겠는가.
회사에 가만히 앉아 일하다 보면 갑자기 적막이 흐를 때가 있다. 그러면 유독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꼭 '또각' 소리가 들린다. 이게 무슨 소리 일까 가만히 들어보면 손톱을 깎는 소리다. 회사에서 손톱을 깎는 것이다. 그것도 업무시간에. 누구인지 궁금해 항상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면 똑같은 사람이다. 회사를 창립 때부터 다녔다는 그 사람, 팀장이다.
회사에서 누구나 손톱을 깎을 수 있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만 허용되는 부분이 아닐까? 업무시간에 다른 동료들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전화를 받고 정신없는 시간을 흘려보낼 때 듣는 그 소리는 굉장히 사람의 진을 빠지게 하는 무언의 힘이 있다.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의 주문 같다.
심지어 나와는 다른 직급에 월급도 많이 받는 그는 꼭 업무시간에 손톱을 깎는다. 전무, 상무이사가 눈앞에 있든말든 깎는다. 본인은 그냥 시간이 남으니까, 손톱이 거슬리니까 깎는 것이겠지만 그 행동에는 많은 뜻이 들어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손톱을 깎는 게 익숙해질 만큼 회사가 편하다는 것, 이렇게 회사가 편해질 만큼 그의 주변에는 그를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말이다.
그 옆에 앉아있는 나를 비롯한 모든 동료들은 그에게 그저 하나의 물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의 출근시간은 항상 오전 10시 반이다. 물론 나를 비롯한 모든 동료들은 9시이다. 왜 기준이 이렇게 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항상 그는 미팅이 있다고 말한다. 그 미팅에 대해 보고를 받거나 들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아무 내용도 전달받지 못하고 그냥 회사를 나오지 않는 날도 흔하다.
그가 이렇게 업무를 소홀히 하는 동안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쌓여간다. 그 모든 책임이 나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떠내려온다.
그가 오래된 만큼 전달받는 메일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메일은 그의 메일함 속에만 존재한다. 안에 쌓이고 쌓인 메일들은 돌고 돌아 우리에게 컴플레인 전화 또는 메일로 전달되곤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그를 대신해 죄송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대리 사과를 하는 와중에 이 업무의 과실은 우리가 되고 만다. 남들 눈에 비치는 모습은 우리가 사과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는 외부 또는 위에 자신은 전달했다고 말하면 된다.
그에게 우리들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자신의 직급을 유지하게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사소한 부분들이 쌓여 컴플레인을 건 우리들 중 '누군가'가 있었다. 물론 그에게도 이야기해봤고 그 위에도 이야기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누군가'에 대한 경계와 질책이었다. 결국 '누군가'는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떠나기전 '누군가'가 한 말이 머리에 맴돈다.
여기는 고인 물 때문에 안돼.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는지 몰라. 여기는 퇴보하고 말 꺼야. 난 그래서 여기 있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