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날이 되면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
얼마 전에 생일을 맞이했다. 예전에는 생일이면 마냥 행복하고 내가 태어난 날이라 즐겁기만 했는데 한 해가 지날수록 생일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해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마냥 나이를 먹는 그런 날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깊게 돌아보게 되는 날이 되어버렸다.
내가 태어남으로써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태어나게 돼서 가장 많은 변화를 느낀 사람은 바로 부모님일 테다. 항상 생일 때마다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그 말에 감동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함을 느낀다. 내가 태어남으로써 삶에 너무나 많은 변화를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큰 변화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록 나를 만든 것이 두 분이지만 10달이 지나고 뱃속에서 나와서 어떻게 살고 또 살아가는지는 순전히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수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나란 아이는 부모님의 성격을 반반을 닮아서 두 분 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문제아처럼 자란 건 아니었으나 항상 서로의 대화에는 모든 걸 이해하지 못하는 마지노선이 존재하곤 했다.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거치면서 나 자신에 대해 표현하고 말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다행히 그때보다는 조금 더 깊은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전의 나와의 소통은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부모님과의 대화가 힘들어 피하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쪽이라고 했던가. 부모님은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대화하려 했다. 그리고 그 꾸준함은 나를 열었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친한 친구 같은 부모와 자식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이런저런 방황을 했었다. 특이하게도 외면의 비행이 아니라 내면의 비행이었다. 나라는 아이는 어떤 사람인 지를 알아가는데 큰 시간을 할애했다.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취향을 찾는 일부터 다양한 세계를 느끼고 공감하기 위한 이런저런 활동들도 많이 했다. 혼란 속에서 큰 위기도 몇 번 온 적이 있었으나 그래도 꿋꿋이 버텨내야 했다. 나를 만들어준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도 있으나 세상에 내가 나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이렇게 나와 살아가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지 않을까. 특별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 말이다.
생일날이 되면 예상도 못했던 친구에게 축하를 받는 경우가 생긴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친구들의 안부인사가 올 때면 그저 고맙기도 하고 상대방의 용기에 고맙기도 하다. 오래 연락을 안 한 사람에게는 연락하는데 큰 용기가 필요하던데 그 용기를 나에게 내주어서 고맙다. 이렇게 생일로 인해 만나면서 인연이 점점 더 깊어가는 친구들도 있다.
물론 친한 친구들의 생일 축하 또한 잊지 못할 큰 감동이다. 항상 나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가족 이외에 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일이 지나고 지날수록 점점 더 깊고 깊게 느껴진다. 그럴수록 올해보다 더 단단하게 내년의 생일까지 버텨보자라는 의지가 샘솟는다. 나를 사랑해주는 이 많은 사람들과 또 한 번의 기쁨을 즐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