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점’을 치는 여자
“전문대 가려면 ‘한문’ 절대 버리면 안 된다. 전문대는 한 학기 통틀어 모든 과목 다 본다는 거 알고 있지?”.
“혹시 네가 ‘서울대’나 ‘교대’를 갈 수도 있지 않니? 그러니까 한문 포기하지 말아라. 수학은 90점이면서 한문이 20점이 뭐니?”
나는 언제부턴가 ‘한문’을 아이들 앞에서 ‘세일즈’하고 있었다. 상대를 보아가면서 적절하게 공략하는 영업사원으로 변모해 갔다. 고등학교에서 일명 ‘비주류 교과’ 교사들은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학생들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외판원’ 같은 사람이다.
중학교에서 10년을 채우고 처음 고등학교 왔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쓰레기 과목’ 취급당하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나름 중학교에서 재미있게 수업한다고 아이들에게 인정받았는데, 고등학교에서는 ‘투명인간’이었다. 내가 들어와도 나가도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나도 아이들의 이런 ‘냉대’를 바꿔보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였지만 항상 아이들은 성적으로 나를 좌절시켰다. 수업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이들은 시험기간에 한문은 공부하지 않았다. 남는 시간에 ‘국,영,수’를 했다.
‘어떠한 것이든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그 위에 켜켜이 먼지가 쌓여 무덤과 같이 되어 버린다.’- 마이타오, 「꽃에서 바람에서」, 이어령 편저, 『휴일의 에세이』「제2판」(문학사상사,2003),135쪽
내 마음속에 교사로서의 열정은 서서히 먼지가 쌓여 갔다. ‘그래, 그냥 수업만 하고 나오자. 애들이 듣든지 말든지 그것까지는 신경 쓰지 말자’. 그렇게 앵무새처럼 4년을 보낸 것 같다.
‘인생의 가장 무서운 적이란, 습관적으로 많은 아름다운 생활이 변화하고 뭇 청춘이 마치 자동차 바퀴와도 같이 지나간 자국을 따라 원을 그리며 맴돈다는 것이다. 습관의 노예가 된 많은 사람들을 쳐다보라. 우리는 여전히 맴돌고 있다. 매우 천천히, 아름답고 규칙적으로 슬픔의 바퀴를 따라서.’- 마이타오, 「꽃에서 바람에서」‘습관의 노예’가 된 나는, 그저 ‘종소리’에 반응을 보이는 ‘파블로프의 개’였다.
“선생님, 저는요, 너무 속상해요. 우리 집이 너무 많이 어려워요. 부모님은 아프고, 집은 가난해요.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집이 따라주지 않아서 너무 속상해요.” 마음이 맑고 총명한수진이가 나와 상담 도중에 한 말이다. 아이는 이 말을 하고 ‘한참’이나 내 앞에서 울었다. 나는 교직에 들어오면서 나의 ‘삶’에 대해서는 아이들에게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저 아이들에게는 ‘온실속의 화초’같은 선생님처럼 예쁘게 보였으면 했다. 내가 어렸을 때 가난하게 살았고 ‘가정불화’를 심하게 겪었다는 것을 남에게 말할 필요도 없었고, 동료들에게도 그저 부유한 집에서 잘 자란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었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가난하고 암울했던 과거는 ‘개’에게 백번이고 던져줄 만큼 ‘수치’였다. 그날 부반장 수진이에게 처음으로 내 ‘과거’를 용기있게 털어놓았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 심했다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몸짓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도종환 <자작나무> 전문
그날의 ‘용기’는 나로 하여금 더 대단한 ‘사고’를 치게 만들었다. 나는 ‘미술치료’를 배워서 틈틈이 아이들과 상담을 하였다. 처음에는 그림을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니 그림 속에 꼭꼭 묻어둔 아이들의 상처와 고민이 보였다. 아이들은 그림만을 보고 내가 자신들의 비밀을 맞춘다며 ‘신내림’을 받았다는 헛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그러한 입소문을 타고 아이들은 매 쉬는 시간마다 나를 찾아왔다. 심지어는 내가 모르는, 다른 반 아이들까지 나에게 찾아와서 “선생님이 그렇게 ‘그림 점’을 잘 보신다면 서요? 저도 좀 봐주세요. 제가 요즘 많이 힘들어요”.라는 황당한 말을 하기도 하며, 나를 ‘용한 점쟁이’ 취급을 하였다.
나는 참 당황스러웠다. 이거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 정말 달랐다. 나는 그저 조용히 상담하려고 했는데 일이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의 시선도 매우 부담되었다. 내가 정말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인 줄 아시고, 반에 힘든 아이들을 몇 명씩 데리고 와서 상담해달라고 부탁을 하시기도 했다. ‘진짜 나는 사이비인데, 이러다 내 정체가 들통나서 다른 선생님들에게 우세질을 당하면 어떡하지?’하는 부담감이 서서히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나한테 오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았다. 환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아이들은 정말 아픈 곳이 많았다. 얼마나 아프면 이런 돌팔이에게 찾아오겠는가? 아이들은 나에게 와서 자신들의 고민을 고주리 미주리 말한다. 그림 속에 있는 퍼즐들을 아이들과 조곤 조곤 대화로 풀다 보면 마음속의 ‘응어리’들이 하나둘씩 딸려 나온다. 나는 이 응어리들을 치유할 능력도 없고 해결할 능력도 없다. 다만 아이의 손을 잡고 아픈 부분을 인정해 주고 공감해주고 마지막으로 격려해 줄 뿐이다. 여기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자작나무 같은 나의 과거’이다.
“선생님도 정말 그랬어요?” “그럼, 선생님은 너무 가난해서 참고서 살 돈도 없었단다. 그래서 남이 쓰던 거 물려받아서, 지우개로 다시 지우고 문제를 풀었어.”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누군가 공감해주고, 또한 그 아픔을 비슷하게 겪은 누군가가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묘한 ‘카타르시즘’을 느끼는 것 같다. 그저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자신의 아픔을 누가 알아준다는 그 사실만으로 아이들은 마음속의 ‘고름’을 짜내고, 한결 편안 얼굴로 인사하고 간다. 이럴 때는 구질구질한 나의 과거가 고맙다.
요즘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분야는 ‘학습 코칭’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진로’가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졸업하면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는지, 어른들보다 훨씬 고민이 깊다. ‘학습코칭’과 ‘진로설정’을 상담하다 보면 시나브로 시간이 훌쩍 간다. 마음이 아픈 것은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는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돈’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아이들도 이미 자신들이 많이 가난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미어지듯 아프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이기에 무언지 모를 의무감에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애들아~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법칙이 있어, ‘R=VD’라는 것인데, ‘생생하게 꿈꾸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뜻이야. 오늘부터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봐. 자기 전에 너네들이 이루고 싶은 꿈을 생생하게 떠올려서 마치 사진을 찍듯이 생각하는 거야”
“에이~거짓말, 그걸 어떻게 믿어요?”
“내가 이 방법을 잘 쓰거든, 내 경험담을 말해줄까? 나도 이 방법을 사용해서 교사가 된 거야. 자세한 것은 진도 나간 다음에 말해 줄게. 자 이제 25쪽 펴봐!”.
내가 아무리 재미있고, 상담 잘한다고 소문이 나도, 수업 시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한다. “ 애들아~ 자지 마!! 왜 진도만 나가면 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