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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적성해 Jun 27. 2021

유칼립투스

작년에 새 집에 이산 온 후에 반려식물들을 들였다. 녹보수, 콤펙타, 테이블 야자, 스킨답서스 등 쉬우기 키운 아이들 위주로 선택했다.

예전에는 집에 있는 식물이 말라비틀어져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관심을 가지고 물을 주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마치 온가족이 목욕탕에 가서 때를 미는 것처럼, 욕실로  데리고 와서 샤워기로 주면 끝이다.

 삼 주 전에 남편이 유칼립투스를 사왔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예쁘고 섬세하여서 거실 한 복판에 놔뒀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줘도 잘 자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 남편과 같이 화분을 욕실에 옮기려다 잎마름이 시작된 유칼립투스를 발견했다. 둘 다 당황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아이는 키우기가 매우 까다로운 아이란다.ㅠㅠ

 식물의 물 주기는 그 아이에 맞게 적절하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 버리고, 적게 주면 말라비틀어지고, 그야말로 過猶不及이다.

학교에 있다 보면 유달리 다른 아이들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들이 있다. 본인들도 이러한 문제로 교우관계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 괴로워한다. 

 내가 경력이 얼마 없었을 때는 이런 아이들이 돌발행동을 하거나 자기 고집을 부리면 야단을 치기도 했다. 사회 나가면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데, 너무 세세하게 다 맞춰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학교의 단체 생활이 사회성을 키우는 것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념도 있었다. 하지만 교직 경력이 쌓이고, 나도 두 아이의 부모가 되면서 생각이 많이 틀려졌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게 태어났고 성격도 다 틀리다. 우리집에 유칼립투스는 물을 자주 주어야 하는 아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쩌겠는가? 유칼립한테 ‘너는 옆에 있는 녹보수나 콤펙타처럼 일주일에 물 한 번만 배급받아라’라고 명령을 한들 바뀌는 것은 없다. 한 번 급수하면 종이조각처럼 말라비틀어져 버릴 것이다.

 해마다 담임을 맡으면 누가 물을 자주 주어야 하는 아이인지 탐색해본다. 그런 아이들은 아침 조회 때 안색을 한 번 더 살피고, 쉬는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서 한번 더 살펴본다. 불편한 것은 없는지, 힘든 것은 없는지 슬쩍 물어도 본다. 좀 친해지다 보면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 들을 꺼내 놓는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능력자라 이 아이들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없다. 그저 나는 이 아이들의 말을 들어만 준다. 그리고 격려해준다. 누구보다 예민한 아이들인지라, 그들의 뾰족하고 섬세한 잎과 뿌리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

 몇 년 전, s군이 생각난다. 고1 때 몇 번 친구들과 주먹다짐을 했고, 감정 기복이 심하니 잘 부탁한다는 전 담임의 말을 듣고 내심 부담이 되었었다. 고2가 되어서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s군은 화가 나면 분을 잘 참지 못했다. 워낙 강한 개성의 소유자라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는 것을 참지 못했다. 틈만 나면 형광색 티셔츠를 체육시간에 입어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 해에 유칼립투스는 s군 혼자였기에, 정성껏 물을 주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 이혼 후, 아버지 밑에서 자란 s군은 또래들보다 일찍 철이 든 편이었다.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다가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편이라 미용사로 꿈을 정했다. 두어 번 자격증 시험 보러 갈 때 응원의 의미로 떡볶이를 사준 적이 있는데,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기특한 모습을 보였다. 암튼 s군은 다행히 우리 반에 잘 적응하였고, 후반부에는 친구들과도 매우 잘 어울렸다. 고3 올라가서는 고2 때보다 더 안정적으로 학교생활을 했다고 한다. 졸업하는 날 나를 찾아왔었다. 나는 진심을 다해 s군을 축복해주는 말을 했다.

“ oo야! 너는 생활력이 강하고 미적인 감각이 뛰어나서 분명 꼭 성공할 거야.”

나의 말에 s군은 쑥스러워하면 서도, 내 헤어스타일은 평생 무료로 책임져주겠다는 말을 교무실에 있는 온 선생님들이 다 듣도록 외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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