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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Aug 01. 2017

담뱃불 같은 사랑이었다.

영화 '남과 여' 리뷰

"잊을수록 좋은, 그런 기억도 있으니까"



권태로워서,

외로워서,

그리워서,

혼자라서,

너라서,

그냥.


나는, 당신은

사람들은 갖은 이유로 사랑을 한다.

사랑에 빠진다.

더욱 깊어지는 사랑에 뛰어든다.


사랑만큼 이유가 다양한 감정이,

사랑만큼 서술어가 다양한 감정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당신과 사랑에 빠진 건

당신의 담배에 불이 붙던 찰나였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불던 2월의 언저리.

어느정도 정리되었던 술자리에서

당신은 담배를 태웠다.


당신이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이 붙던 그 순간,

타들어 가는 담배의 끝을 바라보다

나는 기어코 당신을 사랑하고야 말았다.



"사는게 왜 이렇게 애매한지 모르겠다"



그날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당신이 내렸다.

소리도 없이.


속절없이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아니 당신이 내뱉은 희뿌연 연기를 슬몃 쳐다보며

나는 아마 당신과 이별을 다짐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에게 사랑을 고하던 순간

나는 당신과의 이별을 직감했다.


사랑이 전부가 아닌 이 곳이니까.

눈이 내리는 지금이니까.

당신과 내가 나란히 담배를 태우던 순간이니까.

그러니 우리 서로의 권태로움을 끌어안아

사랑을 하자고 했다.



"나 용서하지 않아도 돼.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없거든"



싸락눈에 금방 젖게 된다는 것을

나는 그날 알았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었을 때,

양말 앞코가 짙은 회색으로 젖어있었다.

그게 사랑이었다.


사랑이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은 지도 오래였지만

당신과 있을 때면 꼭 사랑이 전부같았다.


담뱃불은 활활 타오르진 않았지만

손에 닿는 순간만큼은 지독히 뜨거워

이내 화상자욱을 남기고 만다.


그게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날, 우리는 안았다.

그날, 우리는 입을 맞춰고,

그날, 우리는 몸을 맞대었다.



"우연 아니죠?"



이내 담뱃불은 사그라들었다.

가라앉은 앙금같던 슬픔만 남기고

당신은 떠났다.

사랑이 끝났다.


담배꽁초를 바라보다

나는 다시 당신을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속절없이 내리는 눈처럼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다.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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