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주간 단편

겨울의 방랑자

by 주얼

방의 한쪽 모서리에 서있는 낮은 조도의 플로어 스탠드는 실내 전체를 부드럽고 따스한 빛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방 한가운데에 타원형의 갈색 원목 테이블이 있었고, 일곱 명의 사람들이 그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중에서 이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가장 어려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마른 체형에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이마를 덮고 있는 부드러운 검은 머리와 그 아래에서 촉촉이 빛나고 있는 검정 눈동자, 반듯하게 선 콧날, 그리고 살며시 다물고 있는 얇은 입술에서 단정함과 차분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신비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의 순서는 일곱 명 중 가장 마지막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 앞의 여섯 명이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마친 후 드디어 그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줄곧 테이블 아래에 두고 있던 두 손을 테이블 위로 올리고 왼손으로 그의 앞에 놓여있던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두 손을 살짝 깍지 끼고 시선은 그 깍지 낀 손으로 향한 채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가 열아홉 살 때, 그 해 1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날씨가 갑작스레 추워진 날이었고 그는 회사에서 일하던 도중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어요. 갑자기 심장 부근을 부여잡으며 쓰러진 후 아버지가 죽기까지는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해요. 제가 학교에서 소식을 듣고 급하게 병원에 도착했을 땐 그의 심장은 이미 멈춰버린 뒤였죠."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제가 어릴 때─다섯 살쯤이었던 것 같아요─이혼을 했어요. 누나는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가서 따로 살았고, 저는 아버지와 원래 살던 집에서 둘이 함께 살기 시작했죠. 어머니는 이혼 후 얼마 안 돼 재혼을 했고 저는 그녀를 거의 볼 수 없었어요. 아버지와 함께 가끔씩 누나를 만나긴 했지만 그 만남도 점점 뜸해졌고요. 그래서 저에겐 가족이 아버지 혼자뿐이었어요. 아버지는 유일한 가족이면서, 저에겐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했어요. 전 집에 있을 때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버지와 함께 있었어요. 보통은 그의 방에서 그와 함께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보내곤 했죠. 그는 음악과 문학을 좋아해서 수많은 음반과 책을 꾸준히 모았어요. 그런 그에게 저도 많은 영향을 받았고요. 저에게 그와 함께하는, 특히 그 방에서 함께하는 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도 즐겁고 편안한 시간이었어요. 저는 친구도 필요하지 않았고, 그 어떤 다른 재밌는 오락거리도 필요하지 않았어요. 그저 아버지와,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그 시간과 공간만이 있으면 충분했어요." 그는 잠시 그 시간과 공간을 떠올리는 듯 시선을 먼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깍지 꼈던 손을 풀고 양 손바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저에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극복하기 어려운, 무엇으로도 다시 채울 수 없는 커다란 상실감일 수밖에 없었어요.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 어떤 준비조차 할 수 없었죠. 저는 이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는 아버지가 죽은 이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당시 그는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지만 시험을 보고 대학을 가는 것에 대한 의지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사후에 정리해야 할 이런저런 것들을 겨우 처리한 이후 얼마 동안은 학교에도 가지 않고 밖으로도 나오지 않은 채 집안에만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방 한쪽 구석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음반과 책을 그냥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이 방의 물건들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주인을 잃은 채 그 존재가 잊혀버릴 것만 같은 분실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 자신도 존재의 필요성이 희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방 한편에 설치되어 있는 오디오에 머리를 기댄 채 아버지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계속 울기만 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른 이후 그는 아직 남아있는 학기 동안 학교를 다니고 학기를 마쳤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되자 그는 어디든 떠나기로 결심했다. 얼마 동안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곳이 아닌, 이 곳이 생각나지 않는 곳으로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아무런 이유와 목적 없이 그저 낯선 곳을 걸어 다니고 싶었고, 겨울바람에 마른 낙엽이 날리듯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당장 필요한 짐만을 간소하게 챙겨서 작은 백팩에 넣었다. 그리고 버스 터미널로 가서 큰 도시가 아니면서 가장 낯설고 멀다고 생각되는 지역을 골라 승차권을 사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곧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그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차가운 겨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낮게 드리워진 회색 빛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스무 살도 안 된 아직은 어린 소년처럼 보이는 그가 혼자서, 그것도 관광지도 아닌 지방의 소도시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딜 가나 그는 자신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그를 보는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불안과 의심, 때로는 위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먹는 것들은 대부분 형편없는 음식들이었고, 그나마 그것도 끼니마다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숙박은 가장 저렴한, 그래서 허름하고 지저분한 여인숙을 골라서 묵어야만 했고, 종종 터미널 대합실 같은 곳에서 밤을 새워야 할 때도 있었다.


그는 해가 뜨면 밖으로 나가 특별한 목적지 없이 걸어 다녔고, 해가 지면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며 대부분의 날들을 보냈다. 걸어 다니는 동안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 생각들은 주로 가족과 그 자신,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다. 가장 먼저 생각났던 건 아버지의 방이었다. 아버지가 길지 않았던 일생동안 꾸준히 수집한 음반들과 책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설치했던 오디오 시스템. 그리고 손수 정성을 다해 그 방을 정리하고 관리하던 아버지의 모습. 어릴 적부터 그는 그 방에서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함께 음악을 듣고, 아버지가 읽는 책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가 조금 더 컸을 때는 아버지 없이도 혼자서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곤 했다. 그는 그 시간이 그 어떤 시간보다 가장 편안하고 행복했다. 그 방은 아버지의 방인 동시에 그의 방이기도 했으며, 그만의 작은 세계였다.

이제는 기억이 흐릿해진 어머니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는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아니,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재혼한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0년도 더 전이었다. 그녀는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었고, 그녀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그저 그녀가 어딘가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랐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날들과 학교 시절, 그리고 그 시절을 같이 보냈던 또래 아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는 워낙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격이라 친구가 없었고, 스스로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수많은 아이들 중 그의 기억에 특별히 남아 있는 아이는 없었다. 아마 그들 대부분도 자신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는 아쉽다거나 미안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도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갔거나, 아니면 취업을 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처럼 방황을 하며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들 모두가 각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 또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모습은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쉽게 그려지지가 않았다.


가끔 마을을 걷다가 서점을 발견하게 되면 그는 그곳에 들어가 자신이 아버지 방에서 읽었던 소설들을 찾아서 구입했다. 그리고 어디든 차가운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곳에 들어가서, 햇살 좋은 낮에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아니면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그 책들을 읽곤 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있으면 아버지의 방에서 책을 읽을 때 느꼈던 편안함과 조금이나마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방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느껴지곤 했다. 그는 점점 그 방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지 두 달이 다 되어 갈 무렵, 그래서 몸과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지쳐가던 무렵에 그는 어느 소도시의 읍내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음반을 팔고 있는 작은 가게 앞을 걸어가던 도중 그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다. 그 음악은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서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힘이 느껴지는 멜로디. 그의 귀에 매우 익숙한 피아노 연주였고, 그는 그 음악을 알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이었고, 지금 흘러나오는 부분은 그 음악의 2악장이었다. 그 음악은 그의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였고, 그래서 그에게도 자주 들려주며 곡에 대한 얘기를 해주곤 했었다. 그는 그 얘기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슈베르트는 젊은 날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방랑을 주제로 한 음악을 많이 만들었었고, 지금 이 음악도 방랑자를 테마로 하여 만든 음악이라는 얘기를.


그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폭이 좁고 안쪽으로 긴 내부 공간 양쪽 벽면에는 중고 바이닐과 함께 CD, 테이프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오래된 중고 음반에서 나는, 그가 아버지 방에서 맡을 수 있는 희미한 곰팡이 냄새가 가게 안에서 느껴졌다. 그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가게에 들어와 그 모습을 보고 그 냄새를 맡은 순간 그의 몸이 아버지의 방, 아니 이제는 그의 방이 된 공간을 기억하고 반응하는 듯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가게 안쪽에 앉아있는 주인에게 지금 나오고 있는 음반이 누가 연주한 음반인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잡지를 보고 있던 머리가 희끗한 주인은 잠시 그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구석의 턴테이블 쪽으로 걸어가 그 옆에 놓여있던 음반 재킷을 들어 그에게 건네주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알프레드 브렌델이 연주한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그 음반은 그의 집에 있는 음반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직접 턴테이블 위에 올리고 톤암을 움직여 그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던 음반, 그리고 그 또한 같은 방식으로 직접 들었었던 음반. 곡은 어느새 3악장으로 넘어가 힘차고 열정적인 피아노 선율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왜 눈물이 나는지 정확한 이유를 그는 알 수 없었다. 수많은 바이닐이 꽂힌 가게 안,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익숙한 음반, 그리고 더욱더 빠르고 격정적인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가는 슈베르트의 음악. 그는 그 순간 자신이 이제는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내면에서 긴 방랑을 마치고 이제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그 방이라고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 곳이, 그리고 앞으로 계속 함께 해야 할 곳이 그곳이란 것을 이제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 방랑자 환상곡을 들은 것은 어떠한 운명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고서 음반 재킷을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주인은 그것을 돌려받은 뒤 말없이 그에게 티슈를 건넸다. 그는 그것을 받은 뒤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저는 바로 숙소로 돌아왔어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제 안의 뭔가가 크게 바뀐 것 같은 느낌. 그게 뭔지는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떠나기 전의 저와는 달라졌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어요. 숙소로 돌아와서는 욕실에 들어가 거울 속의 저를 가만히 바라보았죠. 거울 속의 얼굴은 마르고 초췌하고, 마치 제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그 눈빛만은 분명히 저였고, 전과는 다르게 더욱더 선명하게 빛이 난다는 걸 스스로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눈빛을 보고 있으니 또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그때도 역시 눈물이 왜 흐르는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는 여기까지 말을 한 뒤 잠시 멈췄다. 그리고 다시 그의 앞에 놓인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느꼈던 햇살은 분명 따뜻했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두 달여간의 여행, 아니 막연한 방랑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군요. 그 경험을 통해 제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어떤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는 알 수 있었어요. 너무나도 분명하고 단순한 메시지였죠. 그건 바로 ‘계속 살아라’ 였어요. 더 이상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죠. 저는 한 가지 결심을 했어요. 뭘 하든지 계속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보기로.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을 아버지가 물려준 그 공간과 함께 하기로. 그렇게 한다면 분명 제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는 자신의 양 손바닥을 한번 바라본 후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공간은 단순한 방이 아니라 저에게 가장 소중한, 제가 긴 겨울을 버티고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 그런 존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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