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주간 단편

보통의 하루

by 주얼

보통 사무실에 출근하면 커피 한 잔을 들고 남자화장실을 통해 연결되는 이 곳 야외 테라스에 오곤 한다. 기본적으로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이지만, 실은 시끄럽게 뜨거운 바람을 뿜어 내는 에어컨 실외기 말고는 특별할 게 없는 지저분한 이곳으로 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이곳에서 보이는 한강 너머의 남산타워를 보기 위해서였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남산타워를 보며 천천히 담배를 피우는 건 반년 전에 사무실을 지금 이 곳으로 옮긴 뒤 생긴 내 하루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남산의 능선 가장 높은 곳에 마치 등반가가 등정을 기념하기 위해 꽂아놓은 깃대처럼 솟아있는 남산타워. 특히 맑은 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렵하게 서 있는 남산타워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끼곤 했다. 때때로 한쪽 눈을 감고 원근감을 없앤 채 남산타워를 향해 손을 뻗으면 바로 앞에서 손끝으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이 야외 테라스에서 남산까지 내 시야에 들어오는 공간은 꿈속에서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이 되는 듯했다. 마치 미셸 공드리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하늘 전체에 두텁게 깔려있는 회색빛 먹구름이 남산의 정상 부분까지 낮게 드리워져 남산타워를 가리고 있었다. 안개처럼도 보이는 비구름이 봉우리의 절반 정도를 가리고 있는 모습도 그것대로 신비롭고 환상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남산타워가 안 보이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우울하고 불길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마치 정상 부분을 가리고 있는 구름이 걷히고 나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남산타워가 사라졌거나,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가 대신 서 있을 것만 같았다.

어젯밤 마신 술의 숙취 때문인지 미세한 두통이 느껴졌다. 속은 괜찮은데, 왜 머리만 아프지. 아마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바깥의 날씨는 흡사 온도가 조금 낮은, 그래서 오래 있기 좋은 습식 사우나 같았다. 묵직하게 불어와 피부에 끈적거리며 달라붙는 바람에선 저 멀리 태평양 어딘가에서부터 실려 왔을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습기가 가득 느껴졌다. 그리고 그 습기가 내 머릿속을 눅눅하게 적시고, 두통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머릿속에선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것처럼 웅웅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무거운 돌을 줄 끝에 매달고 공중에서 빠르게 돌릴 때 나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나는 줄을 돌리고 있는 누군가가 줄을 놓으면서 돌이 빠르게 날아가 내 머리를 뚫고 나오는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두 개비 째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깊게 빨아들인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담배를 피우면 머릿속의 바람 소리가 그나마 약해지는 것 같았다.

공기에는 마치 곧 비가 쏟아져 내릴 것을 미리 알려주는 듯 진한 비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제 곧 외근을 나가야 하는데 이동하는 중에는 제발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온갖 서류가 가득한 가방과 노트북, 거기에 우산까지 들고서 빗속을 걸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저 멀리 남산 꼭대기 부분의 구름이 조금씩 걷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며 남산타워가 조금이라도 그 모습을 나타내길 기다렸다. 왠지 모르게 남산타워를 보면 오늘 나에게 행운이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구름은 다시 내려와 남산 꼭대기를 가렸다. 아니 어쩌면 구름은 계속 그대로였을 지도 모른다. 남산타워를 보고 싶은 마음에 내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버린 후 손을 씻고 사무실로 돌아와 나갈 준비를 했다.

하늘은 나의 소박한 소원을 무참히 비웃듯이 내가 회사에서 나온 순간부터 억수 같은 장대비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우산, 다른 한 손에는 서류가방, 그리고 어깨에는 무거운 노트북 가방을 멘 채 무섭게 내리는 빗줄기 속을 걸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역까지 10분이 채 안 걸리는 시간이 오늘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신발은 그렇다 치고, 우산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옷이 대부분 젖어있었다. 젖은 가방을 털고 옷매무새를 고치고 있자니 회의 장소로 바로 오는 윤대리가 갑자기 얄밉게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 윤대리에게 회의 장소로 바로 오라고 한 건 나였다. 집이 그쪽이니 회사로 오지 말고 여유 있게 회의 장소로 바로 오라고, 회사까지 왔다가 가려면 평소보다 더 일찍 집에서 나와야 하지 않느냐고. 필요한 건 내가 챙겨갈 테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마음 편히 오라고. 그에게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었던 나였다.

바보 같은. 괜한 말을 했어, 나도 모르게 속 좁은 푸념이 나왔다. 한숨을 쉬며 승강장으로 향하던 중 지하철이 들어오는 안내방송 소리를 듣고는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고 서둘러 계단을 뛰어 내려가 지하철에 올라탔다. 출근 시간이 지난 후의 지하철 안은 승객보다 빈자리가 많을 정도로 한산했고, 냉방이 잘 돼서 조금 춥게 느껴졌다. 나는 빈자리에 앉아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사무실에서부터 여기까지 정신없이 오느라 느껴지지 않았던 머릿속의 바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 정도. 나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잠을 청해 보았지만 웅웅 거리는 바람소리가 더욱더 선명해져 잠을 자는 것은 포기하고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불고 있는 바람은 어느새 나를 어젯밤의 술자리로 데리고 갔다.

“내가 진짜 배당금으로 월 천만 원 찍으면 회사 바로 그만둔다.” 주식에 5억 원 가까이를 투자해서 굴리고 있는 친구가 말했다. "우와, 배당금 월 천? 근데 배당금은 어떻게 받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주식에 5억 원이나 투자할 수가 있었던 거야? 난 지금까지 모은 돈이 5천만 원도 안 되는데." 친구의 말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제3세계의 언어처럼 들렸다.

“너 작년에 전세로 이사했지?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를 샀어야 해. 봐봐. 지금 난리 났잖아. 그때 샀으면, 지금 얼마가 오른 거야.” 몇 년 전에 대출을 크게 받아 아파트를 산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난 아파트에 살고 싶은 생각 별로 없는데. 아파트보다는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이 난 더 좋더라고. 물론 그것도 비싼 건 마찬가지지만. 응? 정신 차리라고? 그런데 네 아파트는 얼마나 올랐어? 와, 진짜? 대박이다." 친구에게 일어난 일은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먼 나라 일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와 친구들이 만나서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보통 서로의 월급, 주식, 아파트, 차, 그리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기 얘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별로 재미있지도 않고 서로 관심도 없는 얘기를 격렬하게 술잔을 부딪치며 열을 올려 떠들어 대었다. 이제 모두들 사회생활도 짧지 않게 했고, 책임져야 할 가정도 있고, 지출은 늘어가고. 그러니 대화가 예전 20대 시절과 같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그래 당연한 거였다. 더 이상 그때처럼 생산적이지 않은 주제에 대해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떠들고,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는 그 시절 우리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과 아련한 그리움이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 역은 서울역, 서울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에 나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눈앞에 보이는 지하철의 커다란 창과 환한 불빛이 나를 다시 지금 이곳의 현실로 데리고 왔다. 프로젝트 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자비 없이 쏟아져 내리는 장맛비를 뚫고 가야만 하는 현실 속으로.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가방과 우산을 챙겨 의자에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갔다. 머릿속의 바람은 여전히 멈추지 않은 채 거세게 불고 있었다.



10시에 시작한 회의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고, 나와 윤대리는 바로 다음 일정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같이 점심을 먹자는 클라이언트 측의 제안을 사양하고 회의 장소를 빠져나왔다. 업무상 점심식사는 서로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나는 점심만이라도 편안하게 먹고 싶었다. 그들도 제안을 사양해준 우리에게 분명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었다.

비는 멈춰 있었고, 피부에 부딪치는 공기는 머금고 있던 습기를 다 쏟아낸 듯 아까보다 가볍고 산뜻하게 느껴졌다. 나와 윤대리는 회의 장소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카페에 들어가 빈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에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점심시간의 끝을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마치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듯 서로 경쟁적으로 크게 웃고 떠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지금 이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긴장을 풀고 여유로운 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고, 나도 저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에 기분이 조금 씁쓸해졌다.

“과장님, 저 사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내 앞자리에 앉은 윤대리가 커피를 마시다 말고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1시가 넘어가면서 그 많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다 사라지고 카페 안은 음악 소리만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딘가 들어가서 책상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윤대리는 조만간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매우 놀랐지만 태연한 척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윤대리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우선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을 가지며 생각도 해보고 공부도 더 해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 그 말이 가슴 떨리는 말이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어리석고 비현실적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도 지금의 윤대리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나는 윤대리에게 그동안 함께 했는데 아쉽다고,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을 응원한다고 말해줬다. 이것 말고는 딱히 더 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웅웅 거리는 바람소리가 더 크게 들려와 더 이상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카페에서 나와 회사로 다시 복귀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가는 도중 다른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잠깐 만나서 중요한 협의를 하고 싶은데 혹시 와줄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 가능 여부를 묻는 것처럼 얘기했지만 실은 당장 들어오라는 얘기였다. 나는 윤대리를─빗속을 뚫고 무겁게 들고 온 노트북과 함께─회사로 복귀시키고 혼자서 가기로 했다. 클라이언트의 회사는 창동역 근처로 그곳은 내가 태어나서 불과 5년 전까지 살던 곳 근처였다. 그곳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그래서 항상 애틋한 나의 고향이라면 고향일 수 있는 곳이었다. 시간만 되면 자주 가고 싶은 곳이지만 업무 때문에 가는 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클라이언트와 굳이 만나지 않고 전화로 얘기했어도 충분했을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나오니 시간은 벌써 4시가 넘어 있었다. 회사에 복귀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내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중랑천 쪽을 향하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무의식 중에 옛 추억이 떠올라서였을까? 그렇게 중랑천에 도착해 보니 며칠간 계속된 장맛비로 인해 물이 엄청나게 불어 이미 천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거대한 흙탕물이 격렬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 볼만한 구경거리였기에 창동교 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흘러가는 중랑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의도가 있던 건 아니었는데 나도 자연스럽게 그중의 한 명이 되어 흘러가는 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물을 바라보며 20대 시절에 친구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중랑천 둑 위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그 ‘생산적이지 않은 주제에 대해 열정적으로 떠들어 댔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당시 우리가 이곳에서 얘기하고 나누었던 그 수많은 계획들과 미래의 목표들, 꿈꾸었던 모습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모두 다 흘러가는 저 물에 떠내려 간 것일까? 중랑천은 여전히 그때와 같은 자리에서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이 곳에서 조금씩 멀어져 이제는 다시 돌아오기엔 너무 먼 곳으로 가 버린 것만 같았다.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기엔 그에 따르는 희생을 감당할 용기가 이제 나에겐 없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회색 빛 하늘 위로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내가 명동으로 이동한 건 갑자기 남산타워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정말 갑작스러운 충동이었다. 어쩌면 매일 사무실 건물에서 보던 남산타워를 오늘은 보지 못해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나도 모르게 이제 하루에 한 번 이상 남산타워를 봐야만 하는 어떤 징크스가 생겨버린 걸 수도 있었다.

명동역 출구로 올라오자 바로 남산타워가 보였다. 하늘의 구름은 많이 개인 상태였고 남산타워는 여전히 남산의 꼭대기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었다. 나는 명동거리의 초입에 서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별다른 감흥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제 오늘 하루도 이렇게 마무리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냥 집으로 가기엔 뭔가 아쉬워 근처를 서성거렸고, 우연히 발견한 ‘플라스크’라는 편집매장에서 김종서의 2집 앨범 중고 바이닐을 발견해 구입했다. 운 좋게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고, 기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였다. 오후 7시가 넘어가자 서쪽 하늘부터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회색빛 먹구름만이 가득했던 아침의 하늘과는 완전히 다른 아름답고 환상적인 하늘이었다. 오늘 하루도 잘 견뎌낸 나에게 하늘이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바이닐을 가슴에 안은 채 차창 밖으로 번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이 그립고 지금의 현실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현실을 살아가기에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머릿속의 바람이 더 이상 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후의 호수와 같은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버스 뒤로 멀어져 가는 남산타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겨울의 방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