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미리미리 하는 걸 도통 못했다. 어떻게든 해야 할 일을 미뤘다. 숙제든 약속이든 그 무엇이든 꼭 코앞에 닥쳐야지만 부랴부랴 시작했다. 심지어 씻는 것도 자기 직전에 겨우 씻었다. 여담이지만, 나의 아버지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꼭 바로바로 씻으라고 하는 분이셨다. 그래서 난 어릴 때 아버지한테 많이도 혼났다.
일을 미루는 성격이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면 조금 나아질까 싶었는데, 타고난 성격이 쉽게 바뀔 리 없었다. 회사에서 예정된 날짜까지 마쳐야 할 작업이 있으면 난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다가 더 미루면 큰일 나겠다 싶을 때가 되어서야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니 항상 시간이 부족했고 자연스레 야근도 많이 했다. 야근이 잦은 나를 보며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 일이 많은 거 아니냐고 걱정해 줬는데, 그러한 걱정이 무색하게도 대부분의 야근은 내가 자초한 것이었다.
물론 해야 할 일을 미리미리 하든 미루고 미루다 닥쳐서 몰아 하든 결과만 좋다면야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엔 기한이 임박해서 처리한 일의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충분한 시간 동안 수정과 보완을 반복해 계속 발전시킨 결과물과 부족한 시간 때문에 급하게 만들어낸 결과물의 품질이 같을 수는 없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범인들에겐 투자한 시간과 결과의 질은 비례한다.
이러한 사실을 나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성격을 고치자고 매번 다짐한다. 하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난 여전히 충분한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는 삶을 보내고 있다. 일을 그만두었기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분명 전보다 훨씬 늘었지만 부끄럽게도 마감이 닥쳐서야 글을 쓰는 건 변함이 없다. 이번 주에는 합평 모임에 제출해야 하는 소설의 마감이 있었다. 한 달 간격으로 모이는 모임이니 단편소설 한 편을 쓰는데 한 달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절대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난 한 달 중 대부분을 깨지락거리기만 하다 결국 마감 전날이 되어서야 급하게 쓰기 시작해 역시나 밤을 새운 끝에 겨우겨우 완성했다. 그렇게 쓴 소설이 엉망인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왜 자꾸 이런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태생적 게으름이고, 다른 하나는 집중력의 문제다. 특히 집중력의 문제가 크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난 마감이 닥치지 않으면 도저히 집중력이 생기지 않는다. 평소에 쓴 글과 마감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쓴 글은 양과 질에서 비교도 할 수 없다. 쉽게 말해 난 외부에서 압박이 가해지고 그래서 쪼여야지만 능력이 발휘되는 스타일이다.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타고난 성격을 고치긴 힘드니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글을 쓰기 위해선 뭔가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해결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감이 닥쳐야 글을 쓰니 마감을 촘촘하게 많이 만들면 된다. 일주일마다 한 번, 한 달마다 한 번, 삼 개월마다 한 번, 육 개월마다 한 번, 그리고 일 년마다 한 번. 이렇게 설정하면 대략 연간 71회, 얼추 5일마다 마감이 돌아온다. 빡빡하다. 정말 말 그대로 마감에 치이는 삶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마감에 맞춰 글을 쓰는 순간이 비록 온몸을 배배 꼬고 머리털을 사정없이 쥐어짜야 하는 괴로운 순간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글을 쓰는 순간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얀 여백이 한 줄 한 줄 나의 문장으로 채워질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쿵저러쿵 투덜투덜 대는 것 같아도, 결국 마감과 함께 사는 건 내가 좋자고 하는 일이다.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마감에 맞춰 글을 써낸다.
야호! 즐거운 나의 마감 인생.
_202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