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글을 가장 자주 썼던 공간은 카페였다. 출근 전에는 회사 근처, 퇴근 후에는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발견한 또는 동네에 있는 카페에서. 요새는 어디를 가든 카페가 정말 많은데, 개인적으로 글쓰기 좋은 카페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소란스러우면 곤란하고,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하며, 테이블과 의자의 형태 및 높이가 편안해야 한다. 조명이 너무 밝거나 흘러나오는 음악이 귀에 거슬려도 안 된다. 그리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소위 ‘인더스트리얼’이나 ‘미니멀리즘’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한 카페도 글쓰기에 썩 좋지는 않다. 보통 이런 인테리어는 내장재나 가구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소리가 흡수되지 못하고 그대로 반사돼서 울리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유난스러울 수도 있는 조건이라 이 모든 걸 충족하는 카페를 찾기 어려울 것 같지만, 예상외로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원하는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카페가 스타벅스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벅스는 이용하는 손님이 적지 않지만, 지점의 위치나 시간대에 따라 생각보다 조용하고 한적하기도 하다. 내가 가장 애용한 스타벅스 매장은 회사에서 1분 정도 거리였는데, 출근 전 오전 8시쯤 가면 2층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몇 명 있는 손님도 대부분 출근 전 혼자만의 시간을 조용히 보내려는 사람들이어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차분하고 평화로웠다. 그래서 글쓰기에 아주 좋았다. 그 공간 그 분위기를 그대로 내 개인 작업실로 하면 완벽하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퇴사 이후엔 카페도 종종 가지만 그보단 도서관을 더 애용하고 있다. 마침 집 근처에 구립 도서관이 하나 있는데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이 아주 깔끔하고 쾌적하다. 그리고―당연히―매우 조용하다. 환경이 이러니 여기가 바로 집중해서 글쓰기 딱이구나!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다. 아무래도 너무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니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작은 소음도 선명하게 두드러져 오히려 더 신경 쓰인다. 그래도 한 번 자리를 맡으면 편안한 테이블과 의자를 종일, 그것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늘어놓아선 안 된다.
얼마 전에는 개인 작업실을 알아보았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글을 쓰는 게 딱히 불편하거나 부족하진 않았지만, 고정된 나만의 글쓰기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희망은 퇴직하고 전업을 결심했을 때부터 꿈꿔왔었다. 그리고 마침 6월 신작 출시를 앞두고 보다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는 개인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이트를 통해 적당한 공간을 물색해 보았는데 위치와 형태, 그리고 비용까지 모든 게 완벽히 마음에 드는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위치와 형태가 괜찮다 싶으면 비용이 너무 비쌌고, 비용에 맞추자니 차라리 카페나 도서관이 나아 보였다. 앞으로 계속해서 찾아보기는 하겠지만 적당한 곳을 찾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자면 멋들어진 나만의 전용 작업 공간이 없어도 지금까지 글 쓰는 데 문제가 있거나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카페와 집에서―그리고 때로는 사무실에서 몰래―글을 쓰면서도 세 권의 소설집을 무리 없이 작업했고,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그러고 보면 집중해서 글을 쓰게 만드는 건 환경도 어느 정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글을 향한 애정과 의지, 그리고 절박함일 것이다. 조금은 퍽퍽하고 무료한 일상 속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게 글쓰기라면, 그래서 그 순간을 정말 절실하게 원한다면 그 어디에서라도 노트북을 펴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해 문장을 적어나갈 수 있다.
키친테이블노블(Kitchen Table Novel)이란 말 그대로 식탁 위에서 써 내려간 소설을 의미한다.(또는 전문적인 소설가가 아닌 일반인이 쓴 소설이 인정받았을 때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이 세상엔 글을 향한 누구보다 큰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시간을 쪼개어 작은 테이블 위에서 글을 쓰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박완서도 과거에 그랬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지금 분명 그럴 것이다.
글쓰기의 공간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공간에 내가, 그리고 당신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_2024.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