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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얼 Jun 17. 2024

20_어떤 믿음

*이 글은 신작 『당신의 판타지아』(2024.6.25 출간)에 「작가의 말」로 수록되었습니다.



도시계획 회사에서 근무했던 난 2020년부터 우연히 동네 독립서점의 글쓰기 모임에 참여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또 우연히 2021년에 첫 책을 출간했고, 어떻게 하다 보니 2022년부터는 1인 출판사 운영까지 시작했다. 회사 일과 병행하며 내 앞에 보이는 즐거움을 계속해서 좇았다. 글 쓰고 편집하고 출간하는 작업을 출근 전에, 퇴근 후에, 그리고 주말에 틈틈이 시간을 내서 처리했다. 그렇게 4년을 보내며 총 세 권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희열 또한 컸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을 때, 한 권의 책이 나왔을 때, 독자들이 내 책을 읽고 소감을 전할 때 소모된 에너지보다 몇 배 이상의 기쁨을 되돌려 받았다.


그러한 기쁨을 더 크게, 그리고 더 온전하게 누리기 위해 전업 작가 생활을 고민했다. 하지만 회사를 쉽사리 그만둘 수는 없었다. 소설을 쓰고 책을 만드는 순간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서 문득문득 꿈처럼 느껴졌다. 달콤한 환상처럼 느껴졌다. 꿈에서 깨면 이 환상이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는 걸 망설였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안전하게 돌아갈 현실이 필요했고, 꿈에서 깼을 때 두둥실 허공을 걸어 다니던 내 두 발이 착지할 실재하는 지면이 필요했다. 꿈과 환상을 현실로 만들기엔 난 내 소설에,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올해 초에 퇴사하고 전업 작가의 생활을 시작했다.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거나 불안함이 사라진 건 아니다. 이 작품집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지금 이 작가의 말을 쓰는 순간에도 난 내 소설이 여전히 부끄럽고, 내 결정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불안하다. 그런데도 전업 작가를 선택한 건 전과 달리 내게 어떤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처음 책을 냈을 때도, 그리고 작년에 세 번째 책을 냈을 때도 내 소망은 계속 소설을 쓰고 책을 내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시작한다 해도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의심과 불안이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의심과 불안에 완전히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나를 믿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무엇보다 깊고 단단하게. 그래서 나는 믿어보기로 했다. 불안한 미래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쓰겠다고. 어떻게든.


깊고 단단한 믿음은 내가 나아갈 방향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오랜 망설임 끝에 그 방향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이 방향이 틀렸을 수도 있고, 어느 순간 넘지 못할 벽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때마다 후회하고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깊고 단단한 믿음은 분명 그에 따른 충격과 낙차를 최소화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감당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믿음은 내게 그런 힘을 줄 것이다.


이번에 수록된 여섯 편의 소설에는 내가 지난하게 통과한 의심과 불안의 시간이, 그리고 끝내 도달한 믿음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작들과 달리 다소 환상적이고, 다소 어둡기도 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눈앞에 마주한 의심의 순간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세계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깊고 단단하게 믿는 것이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였다. 어떤 믿음은 끝내 좌절과 슬픔을 초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믿음은 분명 유효한 용기와 온기를 전해준다. 나의 믿음이 부디 나와 연결된 누군가에게, 그리고 이 세계에 작은 용기와 온기를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나의 희망이 독자들에게도 진실하게 가닿는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계속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건, 그리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진심 어린 지지와 신뢰를 보내준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 명 한 명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마음 모두 소중히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 마음들이 모여 발하는 다정하고도 따스한 온기를 꼭 끌어안고 나를 지탱하며 소설을 써나가겠다.



_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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