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어떤 사람인가? 수많은 학술적, 개념적 정의가 있겠지만 단순하게 정의해 보자면 예술가는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성, 기술과 재능, 감수성 등을 활용한 창조적인 활동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 세계관 등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연주자, 화가, 배우, 작가 등 문화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예술가 얘기를 꺼낸 이유는 며칠 전 지역 예술가들의 모임에 함께 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업실을 사용하게 되면서 문화재단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문화재단이 추진하는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가 지역 예술가들의 네트워크 형성이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예술가들이 모여 자유롭게 교류하는 모임을 열고 있는데, 지난달에 첫 모임이 있었고 며칠 전 두 번째 모임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 네트워크에 나도 포함이 되었는데, 첫 모임에는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고 이번 두 번째 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에는 나를 포함해 10명 정도의 예술가들이 참석했다. 지난번에 이어 연속으로 참석한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이번이 처음인 사람도 있었다. 각자의 활동 분야는 다양했다. 영화감독도 있었고, 배우, 무용가, 연주자, 설치미술가, 그리고 작가인 나까지. 같은 지역에 거주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예술가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계획된 프로그램을 마친 후 모두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뒤풀이를 진행했다. 뒤풀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면―나를 비롯한―많은 참석자에겐 이 시간이 주요 목적이자 메인 행사이지 않았을까 싶다.
술과 음식을 나오자마자 쉴 새 없이 술잔이 오고 갔고, 서로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조금은 낯설고 서먹했던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왁자지껄 흥미진진해졌다. 낯을 가리는 나도 금세 분위기에 적응해 여러 예술가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흘러 보다 농밀하고 깊은 대화가 오고 가던 어느 순간, 난 그들이 나와는 어딘가 조금은 다른 사람들이란 느낌을 받았다. 어떤 면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이 누구보다 선명하고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분야와 실력에 대한 확고한 애정과 열정, 자부심, 그리고 자신감을 거침없이 말하는 모습이 내겐 꽤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실력과 성취의 수준을 떠나 그들의 그러한 태도가 예술가로서의 매력과 오라aura를 형성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어디 가서 그렇게 소개해본 적도 없다. 앞에서 언급한 예술가의 정의에 따르면 나를 예술가라 칭해도 그다지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아직 모든 면에서 내 실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느낀다. 내가 선택한 작가의 삶을 사랑하고 애정과 열정을 다해 글을 쓴다는 건 의심하지 않지만, 동시에 내가 창조한 작품이 한없이 부끄럽기도 하다. 더 자신 있게, 더 당당하게 나와 나의 작품을 내세우고 알려야 하는데 성격 때문인지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작가로서의,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은 분명 아직 많이 부족하다.
물론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는 게 예술가로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건 아니다. 딱히 그런 걸 내세우지 않더라도 예술을 하는 과정과 행위, 그리고 그 결과물만으로 외부에서 예술가라고 인정받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고 멋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가지는 자부심과 자신감은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낯선 길을 걸어갈 때도, 온 힘을 다한 결과물이 기대만큼 인정을 못 받았을 때도 불안해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나아가게 해 준다. 자부심과 자신감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날 밤 함께 했던 예술가들은 분명 그러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그들이 어떠한 예술 활동을 하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분명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당당했고, 확신이 넘쳤다. 그래서 그들이 멋있어 보였고, 그들이 예술가라는 것에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난 너무도 평범한 일반인에 가깝다.
나에게 예술가라는 호칭이 꼭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은 나에게도 분명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 활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 성장하고, 더 정진해야만 한다. 내가 갖게 될 자부심과 자신감이 허울뿐이지 않도록, 그리고 민망하지 않도록.
_2024.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