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써 3일째였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 구석의 더러운 소파에서 쪽잠을 자고,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한 채 아침에 근처 사우나에서 급하게 샤워만 하며 일을 한지가. 그렇게 내 몰골은 거의 좀비 같은 형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입고 있는 옷에서는 시큼한 땀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할 만큼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의 최종 프레젠테이션 작업이 원래 이렇게 급박하게 해야 될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만들어 놓은 자료도 있었고, 팀장에게도 틈틈이 보고를 해 놓은 내용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팀장도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판단을 했고, 그런 판단에 근거하여 스케줄을 정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그 스케줄에 맞춰 마감시한 3일 전에 팀장에게 프레젠테이션 자료 초안을 보여 주었다. 나는 팀장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 당연히 별다른 수정사항 없이 그대로 진행하라는 반응을 예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자료를 본 팀장은 처음 본다는 듯 이게 뭐냐고, 최종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이렇게 만들면 어떻게 하냐며 그 특유의 듣기 싫은 하이 톤의 목소리로 길길이 날뛴 뒤 전면 재작성을 지시하였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제 3일이 채 안 남았는데 자료를 처음부터 새로 만들라는 것은 대놓고 집에 가지 말라고 하는 소리였다. 팀장이 죽일 듯이 미웠고, 정말로 그를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팀장에게 분노하는 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팀장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나 포함해서 전 직원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항상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불 같이 화를 내고, 사람이 눈치도 없어서 직원들이 싫어하는 행동과 말만 골라서 하는, 한 마디로 우리 회사의 빌런 같은 존재였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당연히 작업 스케줄에 팀장의 성향을 고려해야 했고, 미리미리 최종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방향과 내용을 확인했어야 했다.
그래, 이건 명백한 내 실수였다. 내가 잘못 예상했다.
2.
사무실 구석의 회의실에서 배달시킨 도시락을 먹는 둥 마는 둥 해치우고 나오니 시간은 어느새 저녁 10시가 넘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저녁의 사무실은 정신없고 분주한 낮의 사무실과는 전혀 다른 장소처럼 보였다. 사무실 조명을 모두 끄고 내 자리의 스탠드만 켜 놓으니 마치 어두운 밤바다에 홀로 떠있는 어선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밤새도록 검은 바다 위에서 보이지 않는 물고기 떼를 찾아 헤매는 외로운 어선.
책상 위의 아이폰은 충전기를 꽂아 놓는 것을 깜빡해서 배터리가 방전된 채 전원이 꺼져 있었다. 구입한 지 4년이 넘은 내 구형 아이폰은 100%로 충전해도 반나절을 못 버티기 일쑤였다. 나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스마트폰은 꺼 놓은 채 작업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뻑뻑한 눈을 비벼가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인지 몸이 노곤해지면서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는 작업이 진행되기가 어려울 것 같아 결국 의자에 앉은 채 잠깐만 눈을 붙이기로 했다. 소파로 가면 조금이나마 편하게 누워서 잘 수 있었지만 그렇게 잤다가는 일어나지 못한 채 아침까지 잘 것만 같았다. 나는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무릎담요를 턱밑까지 올린 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진흙 속으로 몸이 서서히 가라앉듯이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내가 있는 여기가 어딘지 바로 깨닫지 못했다. 한참 만에야 내가 사무실에서 3일째 되는 밤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12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덮고 있던 무릎담요를 내리고 의자의 등받이를 원래 위치로 올렸다.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켜면서 크게 하품을 하였다. 그러고는 희미해진 의식을 하나하나 천천히 깨워서 현실감각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을 온전하게 차린 뒤에야 나는 비로소 어떠한 사실 하나를 눈치챌 수 있었다. 회의실의 창문을 통해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회의실 테이블 위의 어떤 물체에서 희미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고, 회의실의 불투명 유리창으로 인해 흐릿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끝이 쭈뼛 서는 느낌을 느꼈다. 번져 나오는 그 빛 앞에 분명한 사람의 형상이 있었다. 나는 잠깐 동안 머릿속이 멍해졌다.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인가?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내가 잠깐 잠을 자는 사이에 다른 직원이 와서 회의실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아마 이게 가장 현실적인 추측일 것이었다. 하지만 요새 회사에 나 말고는 특별히 업무가 바쁜 직원은 없었다. 더군다나 퇴근을 했다가 저녁 10시가 넘어서 다시 회사에 올 정도로 급한 업무를 하는 직원은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이 추측이 성립될 수 없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밤에 혼자 일할 때는 사무실 문을 안에서 잠그고 일을 한다. 오늘도 배달 도시락을 받고 배달원을 보내면서 문을 안에서 잠근 것을 분명하게 기억했다. 이렇게 잠긴 문은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 이상 밖에서는 열 수가 없다. 문을 부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것이란 말인가? 나는 우선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천천히 발소리를 죽여 가며 회의실로 다가갔다. 회의실에 가까이 다가가 불투명 유리창을 통해 본 실루엣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한 남자였다. 귀를 기울이니 키보드를 치는 소리와 함께 간혹 내뱉는 작지만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한숨소리는 보통 사람들이 뭔가 어렵고 고민이 있을 때 내는 그런 소리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회의실 문을 열려고 문고리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건 유령이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게 틀림없어.’
순간 두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은 유령이 분명했다. 저 사람은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나는 꼼짝 못 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물론 무서웠다. 하지만 무서움을 넘어선 무언가 다른 감정이 더 크게 느껴졌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건 어떤 막연한 애처로움, 또는 동정심과 같은 것이었다. 왜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지는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몇 번인가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몸의 감각을 정상으로 돌리고 내 자리로 다시 조용히 돌아왔다. 그리고 의자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무릎담요로 어깨를 덮은 채 회의실 창문의 그 희미한 빛과 그 앞의 사람 형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몸이 조금씩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 의식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3.
눈을 떴을 때 나는 사무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손목시계의 시간은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회의실로 가 보았다. 어젯밤의 그 불빛은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있었던 흔적도 없었다. 단지 내가 어제저녁 도시락을 먹다 흘린 음식물만이 반쯤 마른 채 테이블 위에 남아있었다.
나는 안에서 잠긴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 화장실에 갔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안색은 창백했다. 겉모습만 보면 곧 죽을 사람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몸의 컨디션 자체가 나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잠을 자고 나서 인지 몸 상태는 오히려 가볍게 느껴졌다.
잠시 후 나는 어젯밤 최종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완성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엄청난 절망감과 두려움이 느껴졌지만 지금 와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약 30분 뒤 팀장이 출근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나를 잡아먹으려 들 것이고, 나는 아마 고개를 땅에 쳐 박으며 오늘 중으로 무조건 완성하겠다고 할 것이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마음을 굳게 먹자고 생각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이미 팀장이 출근해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팀장은 사무실로 들어오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면서 얘기했다.
“뭐야 김 대리, 어제도 집에 안 들어갔어? 내가 보낸 카톡 안 본거야?”
“네? 카톡이요?”
“이 사람아, 코로나 때문에 최종 프레젠테이션 연기됐다고 내가 어젯밤에 카톡 보냈잖아! 생각해서 일부러 보내줬더니만, 이제 내가 보내는 카톡은 보지도 않는구먼!”
나는 스마트폰이 꺼져 있었다고, 충전을 안 했다고 차마 얘기하지 못했다. 밀려오는 허탈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고만 있었다.
“이 사람 몰골 좀 봐라. 어서 집에 들어가!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고? 그러다 김 대리 아프면 나만 난처해지는 거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얼른 들어가서 잠 좀 자. 내일도 그 얼굴로 오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나는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 사무실을 급하게 빠져나왔다. 지하철 출구에서는 수많은 회사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방향과는 반대로 지하철 출구로 들어갔다. 평소의 출근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한산한 지하철 안에 앉아 나는 생각했다.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라고. 그리고 내 예상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고.
4.
그날 밤 이후로도 사무실에서 밤샘 작업을 몇 번 했지만 그 유령을 다시 보지는 못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날 밤 보았던 그 유령을 생각하곤 한다. 회의실에 홀로 앉아 한숨소리를 나지막이 내며 뭔가를 작업하던 그 유령의 모습을. 지금 생각해보면 그 유령은 아마 나의 내면 의식이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의 모습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날 밤 내가 느꼈던 유령에 대한 동정심과 애처로움은 결국 나에게 스스로 느꼈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