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주간 단편

걱정과 응원

by 주얼


1.

“그럼 오늘 모임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모두들 조심히 들어가시고 남은 일요일 오후 편안히 보내세요.”

유정의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영화감상 모임은 마무리되었다. 참가자들은 모두 떠났고 유정은 남아서 노트북을 챙기고 종이컵과 빈 물병 등을 치우며 자리를 정리했다. 정리를 마친 뒤 매니저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해는 이제 막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저 멀리 서쪽 하늘에서부터 희미한 주홍빛 노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유정은 오늘 하루도 이제 다 갔구나 생각하며 삼성역 5번 출구로 들어갔다.


유정은 올해 초부터 영화 감상 모임의 호스트를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씩 일요일마다 본인이 선정한 영화로 참가자들을 모집하여 그들과 함께 영화에 대한 감상과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이 직접 감상 포인트와 그와 연계되는 다양한 생각거리 등을 마련하여 대화를 유도하고 모임을 진행했다.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고, 지금도 여전히 영화를 좋아하는 유정이로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영화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신당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하늘 전체에 노을빛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뻤기에 유정은 스마트폰을 꺼내 그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온 계절의 경계에서 느껴지는 선선한 밤공기의 촉감을 사진에 담을 수 없는 것에 자못 아쉬워했다. 유정은 잠깐이라도 걷다가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막상 걷고 나면 피곤해질 것 같아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로 발길을 돌렸다.


집 근처의 편의점에 들려 몇 개 남지 않은 도시락 중 하나를 골라 탄산수와 같이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 앞에 도착하자 유정은 왼쪽 어깨에 메고 있던 에코백의 안을 뒤져 열쇠를 찾았다. 그녀가 살고 있는 오래된 원룸의 현관문에는 아직 전자 도어록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현관은 며칠 전부터 센서등이 고장 나 불이 켜지지 않았다. 어두운 현관을 지나 집에 들어온 유정은 식탁 위에 열쇠와 스마트폰, 도시락과 탄산수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식탁 위의 작은 스탠드를 켰다. 매고 있던 에코백은 침대 옆 바닥에 내려놓고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식탁 의자에 앉아 탄산수를 한 모금 마셨다.


이 시간에 집에 들어와 어두운 조명 속에 혼자 있으면 나른한 편안함과 함께 어쩔 수 없는 허전함과 쓸쓸함을 느끼는 유정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혼자 산지도 4년째가 되어 가는데 허전함과 쓸쓸함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고 더 짙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의자에 앉아 있는데 카톡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엄마였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니? 혼자 있다고 대충 아무거나 먹지 말고’

‘일요일인데 집에 와서 엄마랑 같이 밥도 먹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그놈의 무슨 영화모임 한다고 주말에도 못 쉬고 안 피곤하니’

‘엄마는 니가 몸도 생각하면서 주말에는 좀 쉬었음 좋겠다’


유정은 자신이 ‘그놈의 무슨 영화모임’을 하는 것에 대해 엄마는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랑 그 얘기를 하면 매번 똑같은 대화의 반복이었다.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유정은 생각했다.


엄마 뜻대로 내가 영화를 직업으로 하는 건 포기했으니, 좋아서 취미로 하는 일에는 제발 잔소리 좀 하지 마.

엄마가 괜히 그러니. 다 니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몸도 약한 애가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병은 무슨 병이야. 나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의 메시지를 보고 나니 가슴 한편이 답답해지면서 갑자기 오늘 하루의 피로감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유정은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팔짱을 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식탁 구석으로 내팽개쳐진 스마트폰에선 메시지 알림음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전자레인지의 동작이 끝났음을 알리는 벨도 함께 울렸다. 유정은 스마트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서 꺼내 왼 팔꿈치를 식탁에 올린 채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2.

유정은 어렸을 적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논리적으로 사고를 하는 것에 우수했다. 글 솜씨도 뛰어나서 읽는 이를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인상적인 글들을 잘 썼다. 그렇기에 그녀가 철학과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그게 그렇게 의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은 않았다.


유정의 엄마는 철학과를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을지가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대를 갔으니 졸업만 하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전공에 대한 아쉬움은 속으로만 삭였다. 일찍 아빠를 여의고도 별다른 방황 없이 반듯하게 자라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학에 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그러니 딸의 학과 선택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앞으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해서 번듯하게 취업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엄마는 생각했다.


그랬었기에 유정이가 대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며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영화를 전공하기 위해 다른 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유정의 엄마는 적지 않은, 아니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우선 말문이 막혔고, 그리고 나선 썰렁한 농담을 들은 것처럼 억지로 웃어넘겼으며, 결국엔 딸에게 불같이 화를 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건 그저 좋아하는 취미일 뿐이지 그걸 직업으로 하겠다는 유정이를 엄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엄마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보다 딸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유정은 이에 대해 내가 무슨 배신을 했냐고, 엄마는 도대체 무슨 기대를 한 거냐고 소리쳤다. 하지만 엄마는 유정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배신했는지 따위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영화감독을,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영화감독을, 그나마 밥 벌어먹고 사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에 여성은 몇이나 되는지 더더욱 알 수 없는 영화감독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강하게 반대했다. 모든 일을 알아서 똑 부러지게 잘했었기에 지금까지 유정이의 선택과 결정에 반대를 한 적이 없었던 엄마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절대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정이도 본인의 뜻을 굽히지 않고 엄마에게 맞섰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날카로운 신경전을 계속한 끝에 엄마는 화병으로 몸져누웠다.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고집이 셌던 유정이도 아파 누운 엄마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유정은 모든 걸 없던 일로 하고 다니던 학교를 조용히 계속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모녀 사이의 갈등은 정리되는 듯했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미움, 그리고 서운함은 각자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아물지 못한 채 번번이 끈적거리는 진물이 흘러나오고 날카로운 쓰라림을 느끼게 하곤 했다.



3.

유정은 침대 위에 비스듬히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는 이런저런 영화 기사들이나 유튜브의 영상들을 보면서 의미 없이 시간을 보냈다. 오늘 모임에서 나눴던 얘기들도 정리해야 하고, 다음 모임에서 다뤄야 할 질문들도 슬슬 만들어야 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습작 중인 단편 영화 시나리오를 이어서 써볼까 하고 워드를 켰지만 머릿속은 도저히 차분하게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곧 꺼버렸다. 결국 유정은 그냥 빨리 자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메시지로 인해 잔뜩 엉켜버린 마음은 자고 일어나야 풀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정은 노트북을 끄고 아침 알람을 맞추기 위해 식탁 위에 던져 놓았던 스마트폰을 가지러 침대에서 나왔다. 스마트폰의 잠금화면을 여니 아까 확인하지 않았던 메시지 알림이 화면에 떠 있었다. 역시 엄마로부터 온 메시지들이었다. 유정은 다시 침대로 돌아와서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카톡 어플을 켜고 엄마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한약을 좀 지었다. 내일 집에 택배로 갈거야’

‘거르지 말고 아침, 저녁으로 한봉씩 잘 챙겨먹어’

‘날도 더워지는데 몸관리 잘해야 뭘하든 할 수 있다’

‘엄마한테 연락 좀 자주 하고’


유정은 누운 채 엄마의 메시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스마트폰을 끄고 오른 팔로 눈을 가렸다. 엄마는 왜 이렇게 항상 자기 멋대로일까. 내가 언제 한약 지어달라고 했나. 굳이 부탁도 안 했는데 왜. 유정은 온갖 생각이 들면서 속으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 깊숙한 곳의 그 상처에서 또다시 희미한 쓰라림이 느껴졌다. 다만 이번엔 이전까지와는 다른 조금은 둔탁한 쓰라림이었다. 마치 상처를 부드럽게 꾹꾹 누르는 것만 같은 쓰라림이었다.


유정은 스마트폰을 다시 켜고 엄마에게 답장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던 뜨거운 것이 결국 코와 눈 언저리까지 올라와 코끝을 찡하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유정은 그냥 스마트폰을 꺼버리고 베개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벽을 보고 옆으로 돌아누워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유정은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는 어깨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