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주간 단편

스물네 살 그 해 여름

by 주얼


거리는 이미 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파란 빛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었고, 날카롭게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은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거리 위에 더욱 선명하게 새기고 있었다. 뫼르소에게 살인을 저지르게 만들었던 태양은 아마 오늘 같은 태양이 아니었을까? 천천히 부는 바람은 뜨겁고 눅눅한 공기 덩어리를 계속해서 거리로 밀어 넣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파란 불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신호등 옆에 설치된 그늘막과 가로수가 만들어 내는 작은 그늘 아래 모여 있었다. 그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거나, 동행과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하염없이 도로 반대편의 신호등 화면을 바라보면서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 서 있었고, 횡단보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소공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공원의 작은 벤치 위에는 노숙자 한 명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 두터운 점퍼를 입고 있었고, 점퍼에 달린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신발은 벗은 채였으며 양말을 한쪽 발에만 신고 있었다. 한쪽은 잃어버린 것일까? 아무런 움직임 없이 웅크리고 누워 있는 모습은 마치 죽은 것처럼도 보였다. 그의 발밑으로는 다 마신 소주병과 막걸리병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어쩌면 그는 기분 좋게 취해 숙면을 취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여름과 공원, 술, 그리고 죽음과 상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불현듯 몇 개의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떠오른 그 단어들은 어떤 신호가 되어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있던 20대의 어느 순간들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스물네 살 여름에 우리는 맥주를 참 많이도 마셨다. 그 해 여름은 정말로 숨이 막힐 듯이 더웠으며, 공기는 온몸을 끈적거리게 만드는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여름에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건 맥주밖에 없다는 듯이 정말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매일 밤(그리고 적지 않은 낮에도) 마시고 또 마셨다. 아마 그때 마셨던 맥주 캔과 병을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 두었다면 내 방을 두 번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인 술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장소에서 맥주를 마셨다. 학교 노천극장에서, 동네 슈퍼 앞 평상에서, 집 옥상에서, 빌딩 계단에서, 개천 둑 위에서, 길거리 벤치에서, 그리고 아파트 주차장에서까지. 우리는 앉을자리만 있으면, 그리고 작은 과자봉지 하나 펼쳐 놓을 자리만 있으면 아무런 고민 없이 주저앉아 맥주를 마셨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마시는 게 재미있었다.

수많은 장소 중에서 가장 자주 마신 장소는 바로 동네 놀이터였다. 그 놀이터는 내가 사는 집과 친구 집 사이의 딱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날 때 둘 모두에게 공평한 이동 거리를 보장하는 장소였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이 장소에서 가장 자주 마신 이유다. 우리는 놀이터 정문 앞에서 만나 바로 앞에 있는 슈퍼에서 캔 맥주 두 개와 ―물론 이건 시작일 뿐이다― 가장 저렴하면서도 양이 많은 과자를 샀다. 그리고 놀이터의 맨 안 쪽에 있는 돌로 된 벤치에 자리를 잡고 둘 사이에 과자 봉지를 뜯어 놓았다. 우리는 거기서 캔 맥주를 홀짝 거리며 때론 웃기고 때론 진지한, 어쨌든 다음 날이면 맥주의 숙취와 함께 대부분 사라져 버리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얘기를 참 많이도 했다. 놀이터의 어두운 구석에서 시커먼 남자 둘이 술을 마시며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끄럽게 떠들어 댔으니 동네 주민들이 꽤나 싫어했을 것이다. 실제로 몇 번은 동네 주민들에게 주의를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가 그렇게 큰지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매일 맥주를 마셔대던 그 해 여름에는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장수하시던 외할머니가 100세를 못 채우고 차가운 장맛비가 내리던 날 돌아가셨다. 모두들 할머니가 오랫동안 복을 누리며 큰 병 없이 살다 가셨으니 호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장례를 치르는 3일 내내 울고 또 울었다. 간암으로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던 삼촌도 끝내 돌아가셨다. 새벽에 전화를 통해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고, 난 그때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같은 동네에 살던 초등학교 동창의 아버님도 갑자기 돌아가셨다. 소식을 듣고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나는 위로의 말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그저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여름이 한창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8월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동창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학을 다니다 다시 수능을 본다며 기숙 학원에 들어갔던 친구였다. 나와 그는 고등학교 때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 그가 기숙 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쳤고,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에서 같이 맥주를 한 캔 마셨다. 나는 그에게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에 꼭 가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그는 죽기 전에 유서는 남기지 않았지만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문자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글과 함께 마지막에 ‘미안하다’고 쓰여있었다. 나는 그가 왜 나에게 문자를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장례식에 어색한 옷차림으로 다녀오고 나면 나는 항상 친구와 함께 놀이터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런 날은 평소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셨고, 평소보다 더 많이 떠들어 댔다. 그리곤 평소보다 더 만신창이로 취해서 집으로 갔다.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 날, 나는 짝사랑하던 동아리 후배를 학교로 불러내었다. 우리는 학생회관 3층의 자판기 앞에 서 있었다. 그곳에선 창문을 통해 운동장이 내려다 보였다. 운동장에는 저물어가는 태양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캔커피를 하나 뽑아 주었고,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 2학기에는 너와 캠퍼스 커플이 되어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얘기했다.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고,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학생회관 어딘가에 있는 밴드 동아리의 연습실에서 쿵쿵거리는 드럼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내 고백을 받은 그녀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자신을 왜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뭔가 멋진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별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그저 좋으니까 좋아할 뿐. 그녀는 실제로 자신은 내가 좋아할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금방 실망할 거라고 했다. 그러니 자신을 좋아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부정하였으나 결국 그녀는 내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캔커피를 창틀에 올려놓고 뒤돌아 가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서 그녀의 긴 그림자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았다. 창틀에 올려진 따지 않은 캔커피의 겉면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는 캔커피를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얼마 뒤 개강을 했을 때 그녀는 나보다 한 학번 위의 선배와 사귀고 있었다.

내 고백이 거절당한 그날 밤에도 나는 어김없이 친구를 놀이터로 불러내었다. 나의 비참한 연애사를 들은 친구는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아버지 몰래 집에서 조니워커 블랙을 들고 나왔다. 우리는 맥주와 위스키를 섞어 마시며 밤새도록 연애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고, 시간이 흘러 동쪽 하늘부터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할 즈음 정신을 잃고 그대로 벤치에 쓰러졌다. 잠시 후 우리는 누군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놀이터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었다. 우리는 부끄러움에 벌떡 일어나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놀이터를 나오자마자 근처에 있던 하수구에 밤새 마셨던 술을 모두 토해 내었다.


며칠 뒤 나는 안과에 갔다. 사물을 바라볼 때 원근감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고, 종종 편두통과 어지럼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증상을 느낀 지는 꽤 됐지만 그동안 계속 미루고 있었다. 몇 가지 검사 후 의사는 나에게 녹내장이 의심되고, 현재 오른쪽 눈의 시력이 많이 상실된 상태라고 했다. 정확한 진단은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른쪽 눈의 시력 상실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중에야 오른쪽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봐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얼마 후 찾아간 대학병원의 의사는 녹내장이 꽤 진행되었고 시력이 많이 약해져 있지만, 몇 가지 안약으로 계속해서 관리를 해주면 완전히 시력을 잃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대신 평생 동안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고 주의 깊게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음주가 원인이 되는지, 그리고 증상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지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의사는 흡연은 영향을 미치지만 음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지나친 음주는 좋을 게 없으니 조심은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대학병원에 다녀온 그날 밤 나는 놀이터에 갔다. 하지만 친구는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맥주도 사 오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조금은 심란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싶을 뿐이었다.

항상 앉던 구석의 벤치에 앉아 나는 오른쪽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왼쪽 눈으로만 놀이터를 가만히 둘러보았다. 정문 오른편에 그네와 시소가 있었고, 왼편으로는 다양한 높이의 철봉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모래밭이 있었고, 그 건너편에는 놀이터의 중앙에 미끄럼틀이 있었다. 모든 것은 항상 있던 그 자리에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다. 사라지거나 변한 것은 먼저 세상을 떠난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좋아했던 그녀, 그리고 점점 시력이 약해져 가는 나의 오른쪽 눈뿐이었다.

나는 손바닥을 눈에서 떼고 앞을 바라봤다. 눈의 초점거리가 갑자기 바뀌면서 살짝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에는 이름을 모르는 별 하나가 유독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코끝으로 늦여름 밤의 선선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스물네 살의 여름은 끝나가고 있었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그늘에서 햇볕 아래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올려 손바닥으로 오른쪽 눈을 가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공원의 노숙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누워있는 벤치와 그 옆에 모여져 있는 술병들, 그리고 그의 양말을 신지 않은 한쪽 맨발을 바라보았다. 나는 시선을 돌려 거리를 바라보았다. 쨍한 햇빛에 환하게 빛나고 있는 건물들,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고 있는 아지랑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뜨거운 공기.

나는 오른손을 내리고 두 눈으로 거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거리는 이미 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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