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주간 단편

흰쌀밥처럼 활짝 웃는다

by 주얼

1.

남향의 거실에는 중천에 높게 뜬 태양으로부터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녀는 그러한 햇살을 등진 채 거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어항 속 구피들을 바라보고 있다. 한가로이 수초 사이를 돌아다니던 구피들은 그녀가 수면 위로 손가락을 올리자 빠르게 방향 전환을 하며 그녀의 손가락 주위로 몰려와 맴돌기 시작한다. 매일 그랬었기에 녀석들은 그녀의 손가락으로부터 먹이가 떨어지길 본능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물속의 구피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검지 손가락 끝으로 물 표면을 살짝 헤집는다. 구피들은 재빨리 사방팔방 구석으로 흩어져 물의 파동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잠시 뒤 다시 그녀의 손가락이 아른거리는 어항 중앙으로 몰려든다.

“휴, 내가 너네들한테 성질부릴 게 아니지.” 그녀는 숨을 한번 내쉬고 옆에 있던 사료통에서 사료를 작게 꼬집어 물 위로 떨어뜨린다. 구피들은 앞다투어 입을 뻐끔거리며 물 위에 떠 있던 사료를 빠르게 먹는다. 그녀는 그 광경을 또다시 가만히 바라본다.

사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가 무심코 했던 말을 제외하면 말이다. 아니, 그 말도 평소 같았으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을 그런 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8시쯤 일어나 천천히 아침을 준비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냉장고의 재료들을 적당히 사용하여 국을 끓였다. 있는 반찬들을 꺼내어 식탁을 차렸다. 9시가 조금 못 돼 그가 일어나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한 젓가락 집어 먹은 그가 말했다.

“아니, 밥이 왜 이래. 왜 이렇게 질어.” 한 마디 더 했다. “아유, 밥 좀 잘하지.” 그리고 반찬을 먹었고, 국을 마셨다.

“그러게, 쌀이 이상한가. 이놈의 밥은 매일 해도 물 맞추는 게 너무 어려워.” 그녀가 대답했다. 그리고 역시 반찬을 먹었고, 국을 마셨다. 그렇게 둘은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가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녀는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그녀가 아침 식사 뒷정리를 다 마칠 즈음에 그가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11시가 조금 넘어 그는 나갔고, 그녀는 집에 혼자 남았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그땐 밥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친 뒤 식탁의 그릇들을 정리하는 중에,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는 중에, 그리고 그가 집을 나간 뒤 혼자 남겨져 가만히 어항 속 물고기들을 바라보고 있는 중에 그 말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밥 좀 잘하지.

속이 상했다. 매일 그런 것도 아니고, 어쩌다 그런 건데 그냥 모른 척 넘어갔으면 안 됐나. 아내가 차려주는 밥 먹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여겨야 하는 거 아닌가. 진밥 좀 먹으면 어떻다고. 생각할수록 그녀는 분해한다. 은근 부아가 치민다.

사료를 거의 다 먹고 또다시 유유자적 돌아다니고 있는 구피들을 보니 괜히 얄밉다. 그녀는 어항 옆면을 중지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한다. “니들은 나 고마운 거 아니?”


그녀는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소파로 간다.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는 신문과 이불, 리모컨, 사탕 봉지 등을 한쪽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소파에 앉는다. 정면으로 장식장 위에 있는 두 아들의 결혼사진이 보인다. 우리 손녀딸은 학교 잘 다니고 있나. 그녀는 갑자기 손녀딸이 보고 싶다. 며칠 전 일요일에 왔다 갔는데도 못 본 지 오래된 것만 같다. 할머니를 부르며 품에 안기는 손녀딸이 눈에 아른거린다.

둘째의 결혼사진을 본다. 둘째 놈은 내가 먼저 연락 안 하면 평생 전화도 안 하지. 꼭 그렇게 엄마가 궁금해서 먼저 전화를 하게 만드니. 아무리 회사일이 바쁘다고 해도 그렇지. 마지막으로 전화한 지 3주도 넘지 않았나. 내 이따 전화해서 한마디 해야지. 손녀딸 생각에 살짝 기분이 풀렸었던 그녀는 둘째 아들 생각을 하며 또다시 괘씸해한다. 그녀는 옆으로 밀어놓았던 사탕 봉지에서 사탕을 하나 꺼낸다. 하얀 박하사탕이다. 껍질을 까서 그것을 입안에 넣고 몇 번 굴리다 어금니로 깨뜨려서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다.


그리고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난다. 속상한 건 속상한 거고 할 일은 할 일이지.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해야 한다. 어제 시장에서 사 온 열무를 다듬어 김치를 담가야 한다. 그녀는 몸을 움직이다 보면 아침의 기억도 사라지고 기분도 나아질 거라 생각한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 앞치마를 두른다. 그리고 어젯밤 방송에서 들었던 트로트를 나지막이 부르며 세탁기 앞으로 간다.



2.

그는 복지관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는 중에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녀의 행동과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식탁을 정리하던 손놀림에서, 설거지를 하던 뒷모습에서, 그리고 자신이 나갈 때 현관에서 배웅을 하며 지었던 표정에서 그녀가 분명 뭔가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그는 알아차렸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유는 하나라고 그는 생각한다. 밥 좀 잘하지. 이것 말고는 없다. 매일 똑같은 아침에서 뭔가 하나 달랐다면 이것뿐이었다.

그는 생각한다. 그래, 그 말이 비난조로 들렸을 수도 있지. 그래도 그런 게 아니었단 걸 모르나. 무심코 했던 말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녀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지 않았던가. 그럼 그걸로 끝난 건데, 왜.

진의가 뭐였든, 상황이 어땠든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서 그는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엔 너무 오래 같이 살았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오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가 묻는다.

“이 친구 오늘 무슨 일 있어? 아침에 아내한테 혼나기라도 했나? 수업시간 내내 멍하니 바보 같은 표정이나 짓고 말이야.”

바보 같은 표정이라고? 이 영감탱이가.

“아무 일 아냐.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그는 가방을 챙겨 들고 앞장서 나간다. 친구는 그의 옆으로 나란히 걸으며 묻는다.

“무슨 일 있구먼. 뭔 일이야. 말해봐. 고민은 나눠야 가벼워지는 거라고.”

지하 구내식당에 도착한 둘은 식판에 음식을 받아 자리를 잡고 앉는다. 친구는 계속해서 그를 보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침에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 말한다. 자신이 그런 말을 했고, 그래서 아내가 기분이 상한 것 같다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갈 거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고.

"이 간 큰 친구 보게. 아내가 탄 밥을 줘도 감사하다며 먹어야 할 판에 '밥 좀 잘하지'라고 말했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배 밖으로." 친구는 혀를 끌끌 찬다.

그는 친구가 한 말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100퍼센트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이제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자신을 챙겨주고 돌봐주는 건 그녀밖에 없다.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런 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건 도저히 못할 것 같다. 속된 말로 온 몸에 닭살이 돋을 것만 같다.

“드러내 놓고 고맙다, 감사하다 말하는 건 당연히 낮 간지럽지. 반백년을 그렇게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그게 되겠어?” 그리고 친구는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그럴 때에 좋은 방법이 있어. 민망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은 좋은 방법.”

그는 식사를 마치고 냅킨으로 입을 닦으면서 그게 뭔지 묻는다.

“그게 뭐냐면, 칭찬이야, 칭찬. 집사람이 하는 일에 계속 칭찬을 하라고. 오늘 국이 맛있네. 김치가 잘 익었네. 집안이 깨끗하네. 파마가 잘되었네. 아무리 사소한 별것 아닌 것에도 계속해서, 계속해서 칭찬을 하는 거야. 처음엔 영 어색하고 그렇겠지만 계속해서 해봐야 자네도 그게 익숙해진다고. 또 그렇게 되어야 자연스럽게 아내의 모든 것에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되고 말이야.”

친구는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한다.

“내가 장담하지. 이 세상에 칭찬 듣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집사람에게 칭찬을 해, 칭찬을.”

친구의 말을 들은 그는 살짝 코웃음을 친다. 별 것도 아니네, 뭐. 그는 식판을 들고 먼저 일어나 퇴식 구로 향한다. 뒤늦게 식판을 정리하고 이제야 일어난 친구가 그의 등 뒤에 대고 말한다.

“날 믿어 보라고, 이 친구야. 그러면 여생이 편안해진다니까. 자네 그러다 나중에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다 죽어.”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교차로에서 신호를 대기하던 중 그는 친구에게 들었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칭찬을 해라. 아무리 사소한 것에도 칭찬을 해라. 생각해보니 아내에게 언제 마지막으로 칭찬을 했었는지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항상 무언가에 대한 불만만 얘기하고, 비난하고, 못마땅해했던 것만 같다. 내가 칭찬에 조금 무신경하긴 했던 거 같군. 그는 어색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친구 말대로 해보자고 결심한다. 순간 뒤에서 경적이 울린다. 신호는 이미 파란 불로 바뀌어 있다. 그는 서둘러 출발한다.



3.

다음 날 아침, 역시나 평소와 다르지 않다. 그녀는 일어나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준비한다. 다만 그녀는 밥을 하는데 조금 더 신경을 쓴다. 다행히 오늘은 밥이 잘되었다. 그녀는 안도한다. 그가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는다. 그들은 식사를 시작한다.

그는 밥을 한 숟갈 먹는다. 그리고 적당히 타이밍을 잡아 짐짓 태연하게 말한다. “오늘 밥이 참 잘 됐네.” 국을 마신다. “국도 간이 딱 맞고 말이야. 맛있네, 정말.” 그리고 그는 아내를 힐끔 본다. 그녀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지만 얼굴에 살짝 미소가 흐른다. 그는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말하고 보니 정말 맛있다. 밥도 고슬고슬 윤기가 흐르고, 국의 간도 딱 적당하다. 그는 생각한다. 그래, 아내가 해주는 밥은 항상 맛있었지. 내가 그걸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거지.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 열무김치도 진짜 맛있게 담가졌네. 담그느라 고생했겠어. 새곰새곰 익으면 열무김치 넣어서 비빔국수 해 먹자고.”

그녀는 그를 바라본다. 그는 밥을 먹고, 반찬을 먹고, 국을 마신다.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지 생각이 든다. 어제 미안하기는 했나. 그녀는 그가 귀엽기도 하고, 살짝 얄밉기도 하다. 그래도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어찌할 수가 없다. 그녀도 밥을 먹고, 반찬을 먹고, 국을 마신다.


식사를 마친 후 그는 책상에 앉는다. 시 수업이 없는 날은 보통 바둑을 두러 나가곤 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는다. 그는 시를 쓰려고 한다. 오늘 아침의 기분을 시로 남겨보고자 한다. 최근에는 시가 잘 써지지 않아 고민이지만 그래도 써보기로 한다. 그는 시의 완성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지금의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는 컴퓨터를 켜고 하얀 바탕 위에 시를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간다.



<아주 작은 일>

늦은 아침

밥상머리에 앉아

아내에게

‘밥이 참 잘 됐네’라고 했더니 아내가

흰쌀밥처럼 활짝 웃는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이런 것이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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