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발신 주소는 강원도 삼척시로 시작되었고 보내는 사람은 ‘수산나의 집’으로 적혀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하지만 주소를 적은 익숙한 글씨체를 보고 나는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연수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마도 내가 사는 집의 주소를 모르니 회사 주소로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썼다가 회사의 누군가 아는 사람이 보게 되면 내가 괜히 난처한 상황에 처해질까 봐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연수는 2년 전 우리 부서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면서 나와 만나게 되었다. 그보다 3년 선배였던 나는 그의 파트너로 지정되어 그에게 업무를 가르치고 함께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공무원을 준비했었지만 여의치 않게 되면서 다시 취업을 선택했다. 그래서 동기들보다 늦은 나이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는 나와 한 살 차이였고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편하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연수는 조용하고, 여리고, 세심한 성격이었다. 우리 부서는 영업점의 매출과 이익을 관리하고 경쟁 업체를 이기기 위한 판매 전략과 아이템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그래서 매일매일을 긴장 속에서 조금은 터프하게 일을 해야 하는 부서였다. 그가 어떻게 우리 부서로 배치를 받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성격은 분명 우리 부서의 업무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연수는 부서의 업무에 익숙해지기 위해 나름의 최선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종종 버거움을 느꼈고, 그럴 때마다 크고 작은 실수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를 다독이면서 함께 실수를 수습하고 다음 업무를 처리해 나갔다. 나도 신입사원이었을 때는 모든 것이 어려웠고 수없이 많은 실수를 했었기에 연수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며 그 시간을 무사히 통과해 나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불행히도 연수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는 업무의 난이도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계속 쌓여만 가는 업무와 잦은 야근, 위로부터의 압박에 끊임없이 힘들어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겨우 지탱해가고 있던 연수는 끝내 버티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작년 10월이었다. 연수는 담당하고 있는 영업점을 대상으로 하는 물품구매 계약 업무에서 실수를 하였고, 그로 인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고 말았다. 연수가 계약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일은 이제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사원이 혼자 맡아서 처리하기에는 분명 어려운 업무였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누구도 연수에게 직접적으로 잘못을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수가 언젠가는 저런 사고를 칠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연수를 대하는 태도와 시선에 직간접적으로 묻어 나왔다. 연수는 그러한 것을 모를 수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힘들어했다. 그는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뒤, 그는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고 혼자 남은 집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을 기도했다. 다행히도 우연하게 집에 일찍 들어온 어머니에 의해 발견되어 그의 자살 기도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었고 그렇게 퇴사를 하였다.
연수가 그렇게 되어버리고 나서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연수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분명 내가 그를 책임지고 보호했어야만 했다. 그것은 선배로서 그리고 파트너로서 나의 의무였고, 나를 누구보다 의지하고 따르는 연수에게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그를 그렇게까지 가도록 방치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가 퇴사를 한 이후 나는 그에게 계속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고, 메시지에 답장도 해주지 않았다. 그의 집 주소를 알아내어 찾아갔었지만 그의 어머니만을 만나 그가 지금은 누구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는 곧 치료와 요양을 위해 요양원에 입원할 것이라는 말만 들었다.
그렇게 연수와는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오늘, 그에게로부터 편지가 온 것이다.
그의 편지를 사무실에서 읽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 편지에 대해 물어볼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반으로 접어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와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어린이 공원에 갔다. 이 정도는 와야 근처에 회사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았다.
떨리기도 하면서, 조금은 설레는 기분으로 편지 봉투를 뜯었다. 연푸른 빛의 도톰한 편지지 세 장에는 연수 특유의 단정하고 명확한 필체로 쓴 문장들이 차분하게 적혀있었다. 그는 내게 갑자기 편지를 받게 되어서 놀라지는 않았는지, 그래도 내가 자신의 편지에 부담보다는 반가움을 느꼈길 바란다면서 편지를 시작하고 있었다.
제가 회사를 그만 둔지도 거의 6개월이 지났습니다. 분명 짧은 시간이 아닌데 불과 얼마 전까지 회사를 다녔던 건 아니었는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때의 기억은 이미 희미해져 버린 것 같은데 말이죠. 선배님은 계속 회사에 다니고 계시겠죠? 이제 입사한 지 4년이 넘었으니 대리로 승진을 하셨을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그렇다면 편지로나마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지금 ‘수산나의 집’이라는 요양시설에 있습니다. 봉투에 적힌 주소를 보셨겠지만 이곳은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이란 곳에 있어요. 삼척이라는 곳도, 거기에 있는 미로면이란 곳도 저는 처음입니다. 아마 일반적인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이 곳에 오는 일이 거의 없을 거 같습니다. 이 곳은 주변에 특별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삼척 시내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주위에는 산 밖에 없는 조용한 마을이니까요.
이 곳 미로면이라는 지명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상했었는데 계속 듣고 말하다 보니 입술을 작고 둥글게 벌려 말해야 하는 이 ‘미로’라는 단어가 어쩐지 귀엽게 느껴져 마음에 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그 '미로'와 발음은 같지만 여기 지명은 아닐 ‘未’에 늙을 ‘老’를 써요. 그대로 풀이하면 늙지 않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정말로 그런 곳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합니다.
제가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궁금하실 거라 생각해요. 6개월 전에 그 일이 있고 난 뒤 엄마는 아들이 또 같은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리고 본인 혼자서는 그런 아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감당할 수 없을 거라 판단을 하셨죠. 그래서 다니시던 성당을 통해 방법을 수소문해 보았고, 누군가 이 요양시설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저에게 조심스럽게 이곳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 혹시 제가 상처 받지는 않을까 걱정하셨던 거죠. 하지만 저는 그때 이미 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어요. 가만히 있다가는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되어버릴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점점 약해져 가는 나를 잡아줄 수만 있다면, 내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만 있게 해 준다면 그게 어떤 것이든 저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지난 12월에 미로면에 있는 이 고요한 숲 속으로 들어오게 된 거죠.
요양시설의 주변은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조용하고 깨끗하지만 그만큼 외로운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현재 제가 있는 병실의 창문은 이제 막 돋아난 밝은 녹색의 잎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 들어오고 나서 침대에 앉아 가만히 창문 밖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어두운 회색의 앙상한 가지들만 보였었는데 어느새 풍성해진 잎들을 보니 자연의 시간이란 것에 대해 놀라움과 경외심을 느끼게 됩니다. 서울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아니 느껴보려 시도도 하지 않았던 것들인데 말이죠.
이 요양시설에서는 심리적으로 연약하고 불안정한 사람들, 예를 들어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자들, 저 같은 자살 미수자들이 함께 모여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있어요. 치료와 재활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딱딱한 느낌의 것들은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이 치료와 재활의 목적이죠. 여기에 와서 처음 받았던 심리치료의 담당 의사는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바깥 사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조금씩의 어긋남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어긋남은 바로 잡고 고쳐야 하는 게 아니라고 했죠. 단지 어긋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것까지도요. 그래야 모두가 건강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죠.
그 말을 들었을 때 어쩌면 저는 제 마음속의 어긋남을 스스로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쳐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억압하고 자학했던 것 같아요. 선배님이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저에게 어쩌다 우리 부서에 들어오게 됐냐고, 너도 참 재수가 없다고 웃으면서 말했던 거 기억하세요? 사실 그 부서로 배치가 된 건 제가 자원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 당시 저는 자신을 극한의 어렵고 긴장된 상황 속에 밀어 넣으려 했어요. 그래야 스스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고통을 견뎌내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더 이상 약하고 희미한 색채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공무원 시험을 중간에 포기했던 것도 계속 그 상태로 남아있을 것만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지만 저는 어떻게든 변하고 싶었어요. 제 성격과 제가 처해 있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리를 해서 선택을 한 것이었죠.
결론적으로 저의 선택은 틀렸고, 실패한 것이 되어 버렸어요. 어쩌면 그 당시의 저는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만을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스로 핑계를 대자면 그때 저에게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고, 주변에는 바른 판단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말한 대로 무책임한 핑계일 뿐이죠. 이제 저는 저의 선택에 의한 결과에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반성과 책임은 선배님에 대한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선배님은 분명 저의 잘못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너의 잘못은 없다고, 부디 회복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희망한다고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선배님의 문자를 받았을 때 정말로 기뻤고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저의 어긋난 선택이 선배님에게 큰 부담과 상처를 드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때는 비록 대답을 할 수 없었지만 그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대답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은 저의 잘못이며 선배님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오히려 선배님이 계셨기 때문에 제가 그 정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만약 선배님이 안 계셨다면 아마 저는 더 빨리 무너져 버렸을 것이라고, 그래서 정말로 감사하고 또 정말로 죄송하다고.
현재 제가 완전히 회복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곳은 강제 입원 시설은 아니기 때문에 제가 원하면 언제든지 퇴원을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조금 더 지내볼까 생각 중이에요. 이곳은 분명 정해진 스케줄에 의해 규칙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개인의 자유시간은 제한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게 힘들다거나 저를 구속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아침 일찍 일어나 가벼운 체조를 하고 식사를 해요. 이후 오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참여할 수 있어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운동을 하거나, 또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가까운 산으로 산책을 가거나, 시설 내에 있는 텃밭에서 채소를 직접 재배해서 먹기도 합니다. 여기서 일상을 보내다 보면 바깥의 세계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이 있는 것 같고 그동안은 잘 알지 못했던 삶의 여유란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조금 더 이곳의 시간에 몸을 맡긴 채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스스로 변해야만 한다는, 세상에 맞게 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저에게 맞는 템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거든요. 그러한 삶의 모습이 아직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지만, 앞으로 내 눈을 가리고 있는 여러 겹의 불투명한 막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없애 나가보려 합니다. 혹여 끝까지 선명해지지 못하더라도 그건 그것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괜찮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여기 있으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삶의 모든 모습이 선명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고, 그것이 잘못된 건 아니죠. 저는 그렇게 믿게 되었어요.
선배님은 삼척에 와본 적 있으신가요? 얼마 전에 삼척에 있는 맹방 해수욕장이라는 곳에 대한 얘기를 들었어요. 초록빛 바닷물과 넓고 길게 뻗어있는 고운 모래의 백사장, 그리고 그 뒤편으로 울창하고 푸르른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는 삼척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 중 하나라고 해요. 그 얘기를 듣고 저는 5월의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맨발로 맹방 해수욕장의 하얀 파도와 백사장의 경계를 걸어보는 상상을 해봤어요. 차가운 바닷물과 따뜻한 모래사장에 번갈아 발을 담그며 걷는 것을 상상하니 왠지 모를 두려움과 평화로움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른 시일 내에 그곳에 가볼 생각입니다. 다행히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외출이 허락된다고 해요.
선배님, 만약 괜찮으시다면 저와 그곳에 함께 가지 않으시겠어요? 누군가가 함께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가장 먼저 선배님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사람은 잘 떠오르지가 않았어요. 선배님과는 겨우 1년 남짓 함께한 게 전부였는데 선배님이 떠올라 스스로도 이상했지만 그게 사실인걸요. 갑작스러운 저의 부탁이 분명 부담스럽겠지만 선배님이 함께 해주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이곳은 개인 휴대폰 소지가 금지되어 있고 인터넷 환경도 썩 좋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을 하려면 편지를 하거나 요양원에 직접 전화를 하는 수밖에 없어요. 편하실 때 천천히 답을 주시길 바랍니다. 선배님의 답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연수의 편지를 다 읽고 난 뒤, 처음부터 한 번 더 읽었다. 편지에서는 그의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우선 그가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 것을 확인해서 안심이 되었고, 그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 반갑고 기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고 편지를 보내준 것이 고마웠다.
나는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열어 삼척시 미로면과 맹방 해수욕장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 곳인지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버스와 기차도 검색해 보았다. 그곳에 간다는 것에, 그리고 그를 만난다는 것에는 어떠한 고민도 없었다. 가능하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최근에는 급한 업무가 없기 때문에 팀장한테 얘기하면 주말을 붙여서 연차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가면 바로 일정을 확인하고 연차 휴가를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편지를 봉투에 넣어 반으로 접고 고개를 들어 잠시 공원 안을 바라보았다. 따뜻하고 밝은 햇살이 공원 안에 가득 차 있었다. 공원 안의 나무들과 놀이기구들은 햇살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등 뒤에서부터 부드럽게 불어와 나의 어깨와 머리카락을 쓰다듬듯 스쳐가고 있었다. 삼척도 여기와 같은 날씨 일지 궁금했다. 나는 조만간 연수와 함께 걸을 맹방 해수욕장을 생각하며 그곳도 오늘 여기처럼 밝은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