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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얼 Sep 05. 2024

30_내 책은 어디에 있을까?



처음 책을 출간한 게 2021년 1월. 당시 인쇄 부수는 50부였다. 소량 인쇄라 권당 단가는 거의 1만 원에 육박했다. 그렇게 인쇄한 책을 서점 한 곳, 두 곳에 입고하다 보니 50부는 금방 소진되었고, 추가로 50부를 인쇄했다. 다시 입고를 진행했고 부족해져서 또 50부, 또 50부. 어떤 때는 100부를 하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1년간 첫 책을 총 450부 인쇄했다. 2022년 두 번째 책을 출간할 땐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초기 인쇄 부수를 500부로 정했다. 대량 인쇄라 비용이 첫 책 450부 인쇄할 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두 번째 책과 함께 첫 번째 책도 디자인을 변경해 500부를 추가 인쇄했다. 이렇게 2022년에 책 2종을 총 1,000부 인쇄했다. 2023년 세 번째 책도 500부를 인쇄했다. 이때 첫 책과 두 번째 책은 재고가 있어서 추가 인쇄는 필요 없었다. 그리고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한 2024년 상반기에는 이전보다 공격적으로 책을 인쇄했다. 재고가 거의 다 소진된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의 개정판을 각 500부씩 총 1,000부, 그리고 6월에 발표된 네 번째 책은 인쇄 비용도 절감하고 어떤 도전을 한다는 의미에서 자그마치 1,000부를 인쇄했다.


이렇게 지금까지 책 4종의 인쇄 부수를 모두 합하니 4,000부가 넘었다.(보통 대량 인쇄를 하면 주문 수량보다 여유 있게 인쇄된다.) 물론 이 정도 숫자는 일반적인 출판사 기준에선 놀랄 것도 없는, 어쩌면 하찮은 숫자일 수 있다. 그리고 아마 단순히 인쇄 부수보다는 실질적인 판매 부수가 더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독립출판 4년 차에 접어든 1인 출판사의―그리고 그 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의―입장에선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숫자이기에 너무나 감사하고도 감격스러운 숫자이다. 참고로 책 판매량은 전체 인쇄 부수의 50%를 살짝 밑도는 수준이다.


며칠 전 책 재고를 파악해 보니 가장 최근에 인쇄한 네 번째 책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수백, 수천 권의 내 책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내 손을 떠났으나 판매가 안 된 책은 분명 입고된 서점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진열대에 놓여있거나(이건 굉장히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책장에 꽂혀있거나(아마도 대부분?), 아니면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쌓여 하루하루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겠지(불쌍한 내 책). 그렇다면 판매된 책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누군가의 책장에 꽂혀있거나 책상 위에 무심히 놓여있을 확률이 가장 높을 것이고, 일부는 도서관 책장에 꽂혀있을 것이며, 분명 중고 서점에도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은 이미 폐지로 수거되어 다른 어떤 형태로 재활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 난 내 소설이 읽히고 안 읽히고는 상관없이 판매만 된다면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1년에 1권이라도 종이책을 읽는 성인이 10명 중 3명밖에 안 되는 상황(성인 종이책 독서율 32.3%,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책을 사는 행위는 출판인에겐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 출판인들 사이에서 책을 사는 분들을 빛과 소금 같은 존재라고 칭하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난 출판인이기에 앞서 작가이다. 책을 만들기 이전에 많은 고민과 노력을 투입해 나만의 소설을, 나만의 이야기를 창작한다. 아마도 많은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그저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가 독자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그렇게 독자와 만난 이야기가 독자의 사고에, 감정에, 세계에 작은 울림을 전할 수 있기를, 그 울림이 계속해서 메아리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독자의 삶에 작은 변화라도 일으킬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4,000부 넘게 인쇄되었고, 그중 절반 가까이 독자에게 다다른 나의 이야기들은 과연 울림을 전하고 있을까? 가끔 판매되는 내 책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 책이 그저 보기에 이뻐서, 또는 단순히 독립출판 소설이 신기해서, 아니면 혼자 창작부터 제작 및 판매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는 내가 가여워서 책을 사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책이 팔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그래도 단순한 판매를 넘어 나를 떠난 책들이 이야기 자체로 누군가에게 유효한 영향을 주었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 소설 그 자체이다. 재미있고, 흥미롭고, 매력적인 소설이라면 판매가 잘되는 건 당연하거니와 분명 독자들의 마음에 단단하게 자리 잡아 오래도록 울림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소설을 쓰자. 무엇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이다.



_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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