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독립출판 북페어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고 싶다.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 수도 있을 텐데, 독립출판에 관심이 없다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3년째 북페어에 부지런히 참여하며 장돌뱅이 생활을 열심히 하는 중인 내게 올해는 분명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하고 활발한 북페어의 향연이 펼쳐지는 해이다. 나와 비슷한 활동을 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수도권에만 집중되어 있던 독립출판 북페어가 작년부터 지방에서 한 개, 두 개 열리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지방의 웬만한 주요 도시에서 우후죽순 개최되고 있다. 2024년 9월 기준으로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대도시는 물론 군산, 포항 같은 중소도시에서도 대규모 북페어가 열렸거나 열릴 예정이다. 이미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서 열리는 다수의 북페어 및 제주에서 열리는 북페어까지 모두 포함하면 대한민국 전국에서 북페어가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러한 독립출판 북페어의 성행은 분명 요즘 독자의 특징 및 지난 서울국제도서전 대흥행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최근 독서 시장의 주요 독자는 여성, 특히 이삼십 대 여성이다. 그리고 북페어의 주된 방문객도 당연히 이들이다.(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내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북페어 방문객의 50% 이상은 이삼십 대 여성이다. 나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방문객 중 여성의 비율은 아마도 거의 90%에 육박할 것이다) 이들은 취향에 맞는 책을 세심하게 고르고, 읽고, 알리고, 작가를 열렬히 지지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이다. 유명한 책이 아니더라도 마음에만 들면 책을 사고 경험해 보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이들에게 독립출판 북페어는 새로움과 흥미로움이 가득한 보물창고이자 축제의 장이다. 누구보다 북페어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책을 비롯한 다양한 상품을 거침없이 구입한다. 어느 지역에서 열리든 기획과 홍보가 제대로만 된다면 이들로 인해 북페어의 흥행은 어느 정도 보장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6월에 개최된 서울국제도서전의 폭발적인 흥행은(작년보다 개최 규모가 줄었음에도 오히려 방문객은 2만 명가량 늘었다고 한다) 지방 도시의 도서 및 문화 관련 담당자들에게 엄청난 놀라움과 자극을 주었을 게 틀림없다. 그동안 재미없고 썰렁한 행사 정도로만 여겼을 북페어가 엄청난 인파를, 특히 젊은 세대를 모이게 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슈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동안 별 관심이 없던 도시들도 앞다투어 북페어를 기획하고 개최하기에 이른 것 아닐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은 나 같은 독립출판 장돌뱅이에게 엄청난 호재임이 틀림없다. 나라는 작가를 알릴 수 있는, 나의 소설을 알릴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가 늘어난 것이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 그래서 일정이 허락하는 모든 북페어에 당연히 참가를 신청했고, 많은 북페어에 선정되기도 했다.(물론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선정된 북페어의 대다수가 9월부터 11월 사이에 집중되어 있기에, 이 두 달 동안은 주말마다 전국 곳곳을 누비며 제대로 장돌뱅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저래 기대되고 흥분되는 2024년 가을이다.
하지만―당연하게도―북페어에 참여한다고만 해서 많은 판매가 보장되는 건 절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런저런 북페어에 참여하면서 깨닫게 된 건―그로 인해 진리라고 받아들이게 된 건―북페어에서의 판매는 정말 예측 불가하다는 것이다. 잔뜩 기대했던 북페어에서 너무나 초라한 수준으로 판매된 적도 있고, 별 기대 없이 마음을 비웠던 북페어에서 예상외의 판매 실적을 올린 적도 있다. 또 그렇다고 단순히 마음을 비운다고 흥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을 비운만큼 판매량도 새털만큼 가벼웠던 적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각각의 북페어에 그저 최선을 다해 임하고, 결과가 어찌 되었든 그저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판매가 많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것도, 공쳤다고 우울해하는 것도 적어도 지금 나에게 있어선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단지 내가 이렇게 다양한 북페어에 참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에, 첫 북페어에서 고작 2종의 책을 선보였던 내가 이제는 책도 4종으로 늘어나고 다양한 굿즈까지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대견하게 생각하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잔뜩 긴장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초짜 장돌뱅이였던 내가 이제는 여유롭게 방문객을 맞이하고 책을 설명하는 노련한 장돌뱅이가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뿌듯해하면 그만이다.
약 3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기회를 통과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나라는 독립출판 장돌뱅이는 조금씩 성장했다. 그리고 운 좋게 시기와 분위기가 잘 맞아떨어져 앞으로 내가 참여하게 될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이 기회를 통해 나는 또 성공과 실패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 낙차만큼 성장할 것이다. 장돌뱅이로서의 성장은 단순히 판매 능력만의 성장은 아닐 것이다. 더욱 멋진 책을 제작하는 출판인으로서의 성장이기도 하며, 그 무엇보다 매력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의 성장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이 기회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
이전 글에서 독립출판 장돌뱅이의 삶이 애달프다고 했다. 맞다. 애달프다. 하지만 애달픈 순간들 사이에서도 화려하진 않지만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다. 작지만 아름다운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내 소설을, 그리고 나라는 작가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그러한 순간들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럴 것이다.
독립출판 장돌뱅이의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_202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