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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얼 Oct 07. 2024

35_산책이 필요한 시기



올해 초 썼던 글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앞으로의 전업작가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소박하지만 소중한 습관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그때 생각했던 습관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아침에 너무 늦지 않게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가볍게 아침 챙겨 먹기, 짧은 분량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문장 필사하기, 너무 멀지 않은 산책하기,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숨이 찰 정도의 운동하기 등.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라 여겼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저 글을 쓴 지 벌써 9개월이 흘렀고, 계절도 겨울과 봄, 여름을 지나 어느새 가을에 접어들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습관 중 꾸준히 지켜나간 것도 있고,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는 것과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격한 운동을 하는 건 이제 어느 정도 몸에 익은 습관이 되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책도 조금씩 꾸준히 읽고 있다. 필사는 초반 몇 달간은 열심히 했다. 하지만 5월부터 신작 마무리 작업과 출간에 많은 시간이 투입되면서, 그리고 이후 이런저런 외부 행사 참여가 많아지면서 점점 뜸해지더니 지금은 완전히 손을 놓고 말았다.(하지만 언젠간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꾸준한 습관이 되지 못해 가장 아쉬운 건 바로 산책이다. 원래부터 걷는 걸 좋아했기에 다른 어떤 목표보다 어렵지 않게 습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봄까지는 의욕적으로 주 3회 이상 산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이 시작되면서 산책하는 습관이 완전히 흐트러지고 말아 이제는 거의, 아니 아예 안 하게 되었다. 게으르고 끈기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래도―부끄럽지만―핑계를 대보자면 유독 덥고 비가 많이 내렸던 올해 여름 탓도 크지 않나 싶다.


산책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산책이 분명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깐이라도 실내를 벗어나 밖을 걸으면서 느끼는 날씨의 변화, 시시각각 달라지는 거리의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마주치는 사물과 사람들에게서 분명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글을 쓰면서 꽉 막히고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에도 산책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그러니까 신작이 나오기 전까지는 나름 부지런히 산책하면서 이러한 효과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후부터 산책을 잘 안 하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최근엔 글쓰기도 이전만큼 잘 안 되는 느낌이다. 글을 쓰려고 하면 왠지 집중도 잘되지 않고, 머릿속은 물먹은 솜이 가득 찬 것처럼 묵직하고 눅눅하기만 하다. 쓰려는 이야기는 흐리멍덩하니 좀처럼 풀리지 않고, 문장은 깔끔하지 못하고 질척거린다. 물론 이러한 상태의 원인을 산책하지 않은 탓으로만 돌리는 건 너무 치졸한 변명 같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무관하다고 하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산책이 글쓰기에 미치는 효과를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나에겐 산책이 필요하다. 다행히 끝이 없을 것 같던 무더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함을 넘어 쌀쌀함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얼마 전 「아직, 여름」이라는 글을 썼는데, 뭔가 조금 민망해졌다) 며칠 전부터 하늘은 더없이 투명하고, 공기는 가볍고 깨끗하며, 햇볕은 밝고 따사롭다. 모든 풍경이 높은 해상도의 선명함으로 반짝인다. 요즘 날씨는 유명한 영화 대사를 빌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거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네."


그러니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밖으로 나가야 한다. 편한 신발을 신고 나에게 맞는 속도로 거리를 걸으며 신선한 공기로 혼탁한 머릿속을 환기해야 한다. 무겁고 눅눅해진 이야기를 꺼내 밝고 따사로운 볕 아래서 가볍고 산뜻하게 말려야 한다. 선명한 풍경을 바라보며 닫혀있던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산책을 통해 조금은 흐트러지고 풀어진 나를 다시 정돈하고 바짝 조여야 한다.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어제저녁엔 집에 가는 길에 평소보다 두 정거장 전에 내려 약 한 시간 정도를 걸었다. 걷고 나니 다리가 살짝 뻐근하긴 했지만, 차갑고도 신선한 밤공기가 어수선하게 들떠있던 내 사고를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중구난방이던 작업 중인 글들의 방향을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었고, 지금 이 글도 기분 좋은 컨디션으로 무리 없이 쓰고 있다. 아마도 틀림없이, 산책 덕분이다.


물론 글이 안 써질 때 산책이 유일하고도 완벽한 해결책일 리 없다. 하지만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산책은―특히, 이 시기의 산책은 더더욱―분명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 힘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른 행위들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더 규칙적이고 꾸준하게 산책하는 습관을 만들어보려 한다. 이번엔 부디 중간에 흐지부지되지 않고 무사히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_202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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