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_아버지의 시집

by 주얼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쯤, 아버지는 일흔 살이 넘으셔서 한 공공시설(아마도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같은 시설)의 시 창작 수업을 듣기 시작하셨다. 아버지가 시에 관심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선택에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를 배우는 아버지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큰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다. 당시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이런저런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곤 했고, 시를 쓰는 것도 그러한 심심풀이 중 하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저 얼마간 하다가 자연스레 그만두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이후 오랫동안 꾸준히 수업을 듣고 시를 썼다. 동호인 모임에 가입해 그곳에서 발행하는 문예지에 자신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취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꽤 오래전부터―어쩌면 젊은 시절부터―시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는 시를 쓰고 싶다는 꿈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일에만, 가족을 책임지는 일에만 온 힘을 쏟다 보니 시 한 줄 제대로 적을 여유가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다 느지막이 삶의 여유가 찾아왔을 때, 그제야 용기를 내 오랫동안 바랐던 일을 시작하셨던 건 아닐까.


그렇게 아버지가 한 편 한 편 자신의 시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어느 순간 팔순을 넘겼을 때, 난 아버지에게 시집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출판사를 운영하며 직접 책을 만들고 출판까지 하는 아들이었으니 너무나 당연한, 어쩌면 너무 늦은 제안이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자신이 무슨 시집이냐고 손사래 쳤다. 부끄러웠던 건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단 아들한테 괜히 수고를 끼칠까 미안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난 전혀 어렵지 않다고, 그리고 그동안 쓴 시를 책으로 엮으면 분명 본인에게도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거라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아버지는 그럼 한번 만들어보자고 했고, 이후 소중하게 모아 놓은 시에서 고르고 골라 정성을 들여 고쳐 쓴 50여 편의 시를 내게 건넸다.


그렇게 2022년 12월, 아버지의 첫 시집 『시에 시를 담아』가 만들어졌다. 판매용도 아니었고 50부만 인쇄한 소박한 시집이었지만 아버지의 기분이 어떠했을지는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난 비록 많이 늦었지만, 자신이 쓴 글이 물성을 가진 책으로 나오고 그 책을 두 손으로 어루만졌을 때 느껴지는 벅찬 뿌듯함과 감동을 아버지에게 전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시집을 지인들에게 자랑스럽게 선물했고, 금세 부족해진 시집을 몇 번에 걸쳐 추가 인쇄까지 했다. 시집을 선물하고 감상을 전해 듣는 아버지가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한 기분일 거라는 건 곁에 있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내 소설책이 나오고 독자들에게 전해졌을 때 나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아버지는 시집이 나온 이후로 이전만큼 시를 쓰지는 않으셨다. 연세가 적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자신이 예전부터 원했던 걸 이뤘으니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가끔 시집 한 권 더 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지나가는 말처럼 했지만, 그건 분명 나의 진심이었다. 아버지가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충만한 만족과 행복을 누리길 바랐다. 아버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 대답에 짙게 배어있는 미련을 난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작년 말 나는 아버지에게 한 권 더 만들어보자고 진지하게 제안했고, 아버지도 못 이기는 척 그러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이전에 실리지 못한 시 중에서 일부를 추렸고, 시간을 들여 고쳐 썼다. 여든 중반의 연세에 분명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테지만 아버지는 기한 내에 작업을 마치고 내게 40여 편의 시를 건넸다. 난 바로 제작에 들어갔고, 이제 2월 초쯤이면 아버지의 두 번째 시집이 나올 것이다.


아버지의 시에는 어머니, 고향, 친구들, 그리고 도시의 이름 없는 존재와 풍경들이 꽤나 자주 등장한다. 모두 아련하고, 애틋하고, 외롭고, 그래서 조금은 서글픈 시적 이미지들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시를 읽으면 아름답고도 모호한 시어에 짙게 밴 그리움과 쓸쓸함, 고독과 슬픔이 느껴진다. 아버지에게 시를 쓴다는 건 어쩌면 지금까지의 짧지 않은 인생과 그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주변 사물을 세심하게 돌아보고 가만히 마주하는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이 통과했던 무수하고도 굴곡진 시간의 흔적을 차분하게 정리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여백을 그저 공허하게 비워두기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온 마음을 다해 정성 들여 한 글자 한 글자 다듬은 시어로 조금씩 채워 나간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에게 시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시집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었다는 건 나에게 너무나 뜻깊고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도 난 스스로 작가나 소설가라고 소개할 때면 왠지 모르게 어색함을 느낀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유명하지 않아서, 또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을만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해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소설을 쓰면 누가 뭐래도 소설가다. 마찬가지로 시를 쓰면 시인이다.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해 그렇게 시인이 되었고, 시인의 아들은 소설을 쓰고 있다. 적어도 아버지는 내게 시인이고, 그의 아들인 나는 소설가이다. 부자(父子) 간에 문학적 감수성이 이어졌는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아버지의 아들이란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아버지가 시를 쓰셔서, 그리고 내가 그의 아들이어서 감사하다.



_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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