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실핀 하나에도 이렇게 원칙이 있었다니. 머리에 실핀을 꽃을 때마다 감탄을 한다. 헤어디자이너 차홍이 'EBS 마스터' 강의에서 알려준 방법으로 실핀을 꽂으니 이전과는 딴판으로 참으로 짱짱한 것이다. 실핀을 꽂을 머리칼을 몇번 꼬은 다음 실핀을 '수직으로 넣어서 눕힌다'. 그동안 실핀을 꽂아봐야 엉성하기만 하여 이걸로 대체 무얼하라는 것인가 했었는데, 차홍의 말대로 따라하니 아하 이렇게 감쪽같이 고정이 되는 것이었다. 머리 앞쪽 중앙의 머리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부스스해지는 것이 싫어서 중앙의 머리 한웅큼을 뒤로 넘겨 고정시키고 싶었다. 차홍의 방법대로 실핀을 꽂으니, 엉성하지도 헐겁지도 않게 딱 고정이 되면서도 실핀이 드러나 보이지도 않아 깔끔하다. 실핀이 까만 이유, 실핀을 했는지 안했는지 잘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본래의 목적까지 완벽하게 달성한다.
EBS마스터는 갖가지 분야에서 강연자를 초대하여 주제별로 10개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홈쇼핑에서 헤어제품을 판매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았고 예능프로그램이나 광고에서도 종종 보았던 그 헤어디자이너를 ebs마스터에서 보게 되니 아주 반가웠다. 홈쇼핑에서 몇번씩이나 매진기록을 세웠던 고데기는 나도 구매한 상품이다. '차홍은 어떻게 브랜드가 되었나'라는 주제로 하는 강의 중 8강쯤 되는 것 같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차홍의 그날의 강의는 이미 절반쯤 지나간 듯 했다.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차홍의 목소리는 늘 미소가 가득한 그의 얼굴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본인의 이름을 브랜드화하여 성공하기까지 긴 시간동안 차홍의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강의였다. 남들보다 훨씬 길었던 스탭 경력조차도 좌절이 아닌 더나은 발전의 기회로 여길 줄 아는 사람, 고객이 미용실에서 멋지게 서비스를 받고 돌아가더라도 집에서 혼자 머리를 손질하게 되면 말도 안되게 우스운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이후 셀프 헤어손질법을 연구하여 손님들에게 자세히 알려주는 사람, 그는 고객만족이 최우선인 사람이다. 동료 디자이너들이 손질법을 그렇게 다 알려주면 매출이 줄어들 거라 만류하였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실제로 미용실에 두 번 올 손님이 한 번 오게 되고 3개월만에 올 손님이 6개월만에 오게 되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그 역시 흔들렸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런 고객이 지속적으로 차홍을 찾게 됨으로써 고객이 점점 늘어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쫓지 않고 진심으로 대하면 결국은 그 진심이 통한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다. 차홍의 성공비결은 그것이었다. 진심으로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지금 당장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 편법을 쓰지 않는 것,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것, 바로 그것이 차홍이 브랜드가 되도록 이끌었다.
작은 것부터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것, 실핀 하나도 그 기본을 지키면 제기능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 수직으로 꽂아서 눕히기, 나는 그 기본원칙을 제대로 지켜서 머리칼 한 줌을 완벽하게 고정시킬 수 있다. 지난 얼마간 아침마다 그 원칙을 실행하면서 차홍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는 어떤 기본과 원칙들을 거스르고 있는지, 그 때문에 어떤 일이 일그러졌던 것인지 돌아보았다.
나의 인생이 브랜드가 될만큼 그리 대단할 것이 없다. 별볼일 없는 월급쟁이, 일희일비하며 참 고단함을 숨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가 맞다고 여기는 것이 주변에 의해 정처없이 떠돌지 않게, 나의 선택을 남의 것과 비교하여 스스로 늪에 빠지지 않게, 혹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면 과감히 수정할줄 아는 용기는 혼동하지 않게, 그렇게 나는 나의 모습으로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