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친구에게 연락이왔다. 비행기로 10시간이상 날아가야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다. 1년에 한번 9월에 한국을 들어온다. 작년같으면 지금쯤 얼굴을 봤을 터, 코로나는 1년에 한번 볼 수 있는 친구조차 막아섰다. 카카오톡으로 보이스톡을 했다. 통신기술에게 가장 고마운 일이 바로 이것이다. 멀리 있는 친구와 무료로 음성통화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 대학 때 늘상 붙어다녔던 친구들, 그 중 하나는 수원에 정착했고, 하나는 호주로 이민을 갔다. 호주에 간 S가 한국에 들어오면 우리는 연중행사로 만난다. '호주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못만나는 건 똑같네 뭐' 하는 말로 서로의 그리움을 달랜다.
스무살 시절에는 매일 붙어다니며 같이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랬던 우리가 어느새 나이가 들었다. 이제 '잠깐 보게 나와' 할 수 없는 거리에 살고 있다. 각자의 시간에 따라 움직이느라 통화 한번 하지 못하고 1년이 흐른다. 그리고, 마치 '우리 지금은 만나야 돼' 하듯이 S는 매년 가을 날아와 우리를 불러모았다. 그런데 올해는 그마저 불가능하다.
오랜만에 음악스트리밍 앱에서 만난 넬의 노래는 이런 내 마음을 읽은 듯 하다. 울컥 눈물이 날뻔했다. 제목 '오분 뒤에 봐'...
뭐해 나 지금 근처에 와있는데
우리 잠깐 만날까
그때 마지막 본 게 언제였는지
너무 오래된 듯해
요즘엔 다 많이들 바쁜가 봐
보기 힘들다
...
오분 뒤에 봐
우리 자주 가던 그래 거기서 만나
정말 이러다 죽기 전에
몇 번 못 볼 것 같아
다른 생각 할 겨를 없을 만큼
정신없이 지내고 있기는 한데
계속 맘 한 켠이 텅 빈 것 같고 좀 그래
채워지지가 않아
...
나의 일상이 나의 시간을 다 채우고도 늘 어딘가 모자란 느낌이 드는 이유, 그리운 것들을 눈에 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려나. 전화 한통화라도, 영상통화라도 할 수 있는 짬이 분명 있는데도, 나는 그저 그리워하다 다음으로 미룬다. 채워지지 않는 한 켠은 어쩌면 자발적인 비움이었을지 모르겠다. 부지런한 사랑이 충만할 수 있는 법, 행동하지 않는 그리움은 아련하기만 할뿐이다.
그래, 복잡한 나를 잠시 내려놓고 움직여야 한다.
안녕 벗이여, 오늘은 무슨일이 있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