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무의식의 시간이라고 한다. 아직 감각의 때가 묻지 않은 시간, 꿈에서 이어지는 나의 본능이 아직 제어받지 않는 시간.
보통은 알람을 5번째 끄다가 이제는 안된다 싶을 때 일어나기 바쁘다.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며 나의 무의식을 살펴보는 '모닝페이지' 같은 활동을 하기에는 나는 잠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나 같은 듯 매일 다른 하루와, 같은 듯 미묘하게 달라지는 나처럼, 매일 맞는 아침도 그렇다. 어느 날은 생존에 급급하더라도, 새로운 영감이 머릿속에 가득 찬 하루도 있는 것이다.
그날 아침이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노래가 떠올랐다. '주의 사랑을 주의 선하심을 주의 은혜를 생각해 보라' 여전히 마지막 알람에 일어나기 급급했지만 내 머리에 가득 찬 이 노래의 평안함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다. 나는 내 방안에 이 공기를 가득 채우고 싶어 음악을 틀었다.
그날 저녁 예배의 찬양 주제는 ‘선하심’이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그 선하심을 볼 때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이었다. 찬양을 부를 때 마음에 꽂히던 가사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시네’였다. 그제서야 나는 내 마음 한 구석에 어떤 일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침의 영감은 내 영혼이 마침내 자유하게 될 오늘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새로운 회사들에 다닌 지 한 달 째다. 사업을 하는 젊은 대표님과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나의 사담 메이트가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오전회사에 구비되어 있는 둥굴레차를 타 먹게 되었고 벽마다 걸려있는 티비 패널의 인상주의 작품을 감상하며 사무실로 간다. 오후회사에서는 사무실 옆 카페의 커피머신에서 음료를 내려 마시고, 카페에서 손님들의 잡담소리를 들으며 일을 한다. 환경만큼 업무도 새롭다. 나는 기존에 하던 프로모션 디자인에서 벗어나 상세페이지나 로고를 디자인한다. 새로운 업무라 시작할 때는 늘 긴장되지만 하다 보면 금세 익숙하고 즐거워진다. 무엇이든 처음은 어색하고 낯설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다. 시간은 그렇게 만든다.
저녁에는 집에서 물건을 찾다가 약을 모아둔 지퍼백을 꺼내게 되었다. 전부 회사 다니면서 조금씩 어디가 아플 때마다 사서는 한 두 알 먹고 나아 버려서 보관해 둔 것이다. 긴 시간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잇몸, 소화불량, 해열, 근육통… 그리고 여기가 아팠었었나 가물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유통기한을 확인해 보니 대부분 지났다. 버릴 약상자를 모아두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한데 모아 손에서 떠나보낸다.
대학원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번 학기 강의를 두 개 듣고 둘 다 화요일에 모여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 첫 주라 하늘도 건물도 공기도 얼어있고, 처음을 맞이하여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도 얼어있다. 그래도 봄은 시작되었기 때문에 새싹 한 잎이 피어난 듯 작고 파릇함이 조금 보인다. 나도 낯선 세계에 얼어있지만 파릇한 설렘이 있다. 직장인 때는 연차를 써야만 누리던 평일 오후시간의 여유가 좋고, 드디어 내가 대학원 생인 것도 기쁘다. 그리고 좋아하는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기대된다. 그 마음으로 오전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며 합법적 자유시간을 즐긴다.
오후 수업이 끝난 후 집에 가기 위해 캠퍼스를 걷는데 갑자기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마음이 허무했다. 왜냐면 안정감을 찾았기 때문이다. 달리는 동안에는 제발 결승선에 도달해서 멈추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멈추고 나니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다리를 움직이고 목표를 집요하게 바라보는 것은 힘들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느껴지던 바람은 참 좋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기 전까지 움직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제 그 바람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결승선에 도달하지 않아도 됐었다고 느끼는 건 절대 아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멈출 수 있어 너무 좋다. 다만 이것은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투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