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에디터
매거진 B는 매월 한 브랜드를 선정해 회사의 성공비결과 철학을 소개하는 잡지다. 조수용 카카오 전 대표가 발행인이자 창간인. 몇 년 전 우연히 박지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통해 먼저 알게 되었는데, 듣는 것만으로도 몰랐던 브랜드들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게 너무 좋았다. 유료가 아닌 게 의아하면서도 다행일정도. 이번에 읽은 책 잡스 시리즈는 매거진 B에서 발간한 직업인 인터뷰 모음이다.
<소설가> 편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한국 소설가들의 인터뷰가 담긴 점이 좋았다. 김연수, 정세랑, 장강명, 정지돈까지. 소설가들도 순수문학만 하는 예술가로서의 이미지만 굳어진 시대는 지났다. 문학계에서도 장르별, 연령별로 나름의 위치 같은 게 있을 거고, '직업인'으로서 전략을 갖고 자기 능력에 걸맞은 입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들이 쓰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꼭 써야 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 그게 대중의 수요와 만났을 때 직업 만족도는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콘텐츠가 막강한 힘을 갖게 된 사회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넷플릭스와 왓챠와 티빙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갈구한다. 모든 콘텐츠는 이야기다. 이야기 없는 콘텐츠는 알맹이가 없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사람들이 작가다.
<에디터> 편은 사실 에디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모르기도 하고, 호기심이 생겨서 읽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너무 멋지지 않은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편집장 메릴스트립의 악독한 인상이 강하게 남아 그들이 가진 권위가 과연 뭘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정보 습득이 너무나 쉬워진 사회에서 에디팅을 잘한다는 건 엄연한 재능이고 실력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소재를 찾아내는 안목, 대중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읽어내는 능력, 잡다한 정보들을 매력적인 프레임에 담아내는 센스. 이것들은 결코 누구나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잡지는 도서관에서 빌리는 게 쉽지 않다. 좁은 아파트에서 미니멀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잡지까지 야금야금 사버리면 공간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눈길이 안 갔었는데 관심을 갖고 보면 어지간한 책 보다 고퀄리티인 잡지들이 꽤 있다. 이 책을 발행한 매거진 b를 포함해, 최근에 읽은 <우먼카인드>는 분기마다 테마를 선정해 다양한 분야에서 인사이트를 갖춘 여성들의 칼럼을 기고한다. 접근하기 어려운 철학을 친숙한 소재로 묶어 만든 <필로소퍼>는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잡지이다. 이것들이 모두 에디터들의 손을 거친다.
에디터란 다양한 것을 모으고 또 모아서, 그 안에서 좋은 정보를 골라 정리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직업입니다.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주어진 기획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아내고 팀을 만드는 능력도 필요하고요. 0에서 1을 만드는 게 아니라, 1을 10으로 만드는 것이 에디터죠. 254p
생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을 마구 이끌어 내는 책은, 그 작품성이 어떻든 나에게 좋은 책이다. 매거진 b에서 발간한 잡스 시리즈가 그랬다. 인터뷰는 그냥 영상으로 보는 게 더 낫지 않나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그렇지만 이 정도의 게스트를 섭외하고, 이런 밀도의 대화를 나누는 영상 채널은 잘 없다. 그들의 직업의식과 삶에 대한 열정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