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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쮸댕 Aug 28. 2022

난자 채취 후 코로나에 걸리다

계획은 대개 차질이 생긴다

난자 채취 이후 복수가 점점 빠지고 불룩하던 배가 많이 낮아졌다. 저염식 위주의 식단을 하고 군것질을 자제하다 보니 몸무게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몸이 회복되면 이식을 하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선생님 말씀에 난자 채취를 하기 전부터 냉동 이식을 결심했었다. (신선 이식은 채취 3일 혹은 5일 후에 수정된 배아를 곧바로 이식) 보통 채취 후 10일 내외에 생리가 터진다. 그렇게 자궁벽이 허물어진 뒤 다가오는 배란기에 이식을 할 계획이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예상 밖의 일은 발생하기 마련이고 계획은 대개 차질이 생긴다.


채취를 하고 불과 일주일 만에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틈을 타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 같았다. ​시험관 사실을 알고 있던 가까운 지인들은 사정을 딱하게 여겼다.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코로나까지 걸리다니 괜찮니?라고 물었다. 바깥에서 보면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는 말에 걸맞게 불운의 연속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절망 속에 있지는 않았다. 일련의 과정들을 겪고 나니 어느 순간 운명론자가 되어버렸다. 인생의 대소사는 운명이라는 정해진 각본대로 일어나고, 그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이냐만 결정하면 되었다.





다행히 코로나 증상이 심하지는 않았다. 하루 이틀 앓았지만 목이 아프거나 코가 막히는 건 없었다. 나머지 격리기간은 오로지 휴식을 하면서 지냈다. ​


문제는 코로나와 함께 생리가 터져버린 것. 원래는 생리 후 2~5일 차에 병원을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비대면 진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로 상담을 받았다. 선생님은 몇 개의 배아가 수정에 성공했는지, 그중 배양에서 살아남은 개수가 몇 개인지, 최종적으로 동결 단계에는 몇 개가 남았는지 알려주셨다. 두근두근. 제일 궁금한 건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숫자였다. ​



"다섯 개를 동결했고, 그중 최상급이 두 개예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건 정말 잘된 거예요. 실망할 게 아니에요!"를 덧붙여 주셨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 20개 난자 중에 고작 5개라니. 25%의 확률로 수정에 성공했다는 게 애석했다. 나머지 열다섯 개의 내 난자들은 어디로 간 걸까. 그렇게 호르몬 주사를 맞고 난포를 키우고 평소보다 스무 배나 더 많은 난자들을 캐냈는데 그것들은 다 어디로 날아간 걸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학적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깊이 생각할수록 공허함이 밀려온다. 케이크 열다섯 조각을 입도 못 대고 버리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굳이 등급을 따졌을 때 배아 상태가 괜찮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다섯 번 안에 착상에 성공하면 더 이상의 채취는 없는 것이었다. 물론 해동 과정에서 배아가 손상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번 주기는 채취와 코로나로 망가진 몸을 회복하는 데 힘쓰기로 하고, 다음 생리 때 이식 날짜를 잡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2개월.  그동안 단 한 번의 생리가 찾아오지 않았다.


분명 배란된 흔적을 초음파에서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코로나와 여성호르몬의 관계성을 의학적으로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나도 원인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코로나 이후 월경주기가 현저히 길어지거나 앞당겨졌다고들 한다.


나는 지금 아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생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의 대상도 이제 모호해질 지경이다. 몇 번의 기다림을 겪어야 임신을 할까. 그 후에 또 얼마나 기다려야 건강한 아기가 탄생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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