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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 채취 후 코로나에 걸리다

계획은 대개 차질이 생긴다

by 쮸댕

난자 채취 이후 복수가 점점 빠지고 불룩하던 배가 많이 낮아졌다. 저염식 위주의 식단을 하고 군것질을 자제하다 보니 몸무게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몸이 회복되면 이식을 하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선생님 말씀에 난자 채취를 하기 전부터 냉동 이식을 결심했었다. (신선 이식은 채취 3일 혹은 5일 후에 수정된 배아를 곧바로 이식) 보통 채취 후 10일 내외에 생리가 터진다. 그렇게 자궁벽이 허물어진 뒤 다가오는 배란기에 이식을 할 계획이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예상 밖의 일은 발생하기 마련이고 계획은 대개 차질이 생긴다.


채취를 하고 불과 일주일 만에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틈을 타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 같았다. ​시험관 사실을 알고 있던 가까운 지인들은 사정을 딱하게 여겼다.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코로나까지 걸리다니 괜찮니?라고 물었다. 바깥에서 보면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는 말에 걸맞게 불운의 연속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절망 속에 있지는 않았다. 일련의 과정들을 겪고 나니 어느 순간 운명론자가 되어버렸다. 인생의 대소사는 운명이라는 정해진 각본대로 일어나고, 그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이냐만 결정하면 되었다.





다행히 코로나 증상이 심하지는 않았다. 하루 이틀 앓았지만 목이 아프거나 코가 막히는 건 없었다. 나머지 격리기간은 오로지 휴식을 하면서 지냈다. ​


문제는 코로나와 함께 생리가 터져버린 것. 원래는 생리 후 2~5일 차에 병원을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비대면 진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로 상담을 받았다. 선생님은 몇 개의 배아가 수정에 성공했는지, 그중 배양에서 살아남은 개수가 몇 개인지, 최종적으로 동결 단계에는 몇 개가 남았는지 알려주셨다. 두근두근. 제일 궁금한 건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숫자였다. ​



"다섯 개를 동결했고, 그중 최상급이 두 개예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건 정말 잘된 거예요. 실망할 게 아니에요!"를 덧붙여 주셨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 20개 난자 중에 고작 5개라니. 25%의 확률로 수정에 성공했다는 게 애석했다. 나머지 열다섯 개의 내 난자들은 어디로 간 걸까. 그렇게 호르몬 주사를 맞고 난포를 키우고 평소보다 스무 배나 더 많은 난자들을 캐냈는데 그것들은 다 어디로 날아간 걸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학적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깊이 생각할수록 공허함이 밀려온다. 케이크 열다섯 조각을 입도 못 대고 버리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굳이 등급을 따졌을 때 배아 상태가 괜찮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다섯 번 안에 착상에 성공하면 더 이상의 채취는 없는 것이었다. 물론 해동 과정에서 배아가 손상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번 주기는 채취와 코로나로 망가진 몸을 회복하는 데 힘쓰기로 하고, 다음 생리 때 이식 날짜를 잡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2개월. 그동안 단 한 번의 생리가 찾아오지 않았다.


분명 배란된 흔적을 초음파에서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코로나와 여성호르몬의 관계성을 의학적으로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나도 원인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코로나 이후 월경주기가 현저히 길어지거나 앞당겨졌다고들 한다.


나는 지금 아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생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의 대상도 이제 모호해질 지경이다. 몇 번의 기다림을 겪어야 임신을 할까. 그 후에 또 얼마나 기다려야 건강한 아기가 탄생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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