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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쮸댕 Aug 29. 2022

난임부부를 위한 복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그 많던 예산은 다 어디로 갔나

조직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까. 회사는 그저 업무에 헌신하고 그만큼 돈으로 보상받는 곳, 온리 기브 앤 테이크만 가능한 곳일까. 평일에는 집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을 머물고, 팀원들과는 가족보다 더 많이 얼굴을 마주하는 곳이 회사다. 비록 일로 엮인 관계일지라도 사생활을 불가피하게 밝혀야 할 때가 있다.  


시험관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처음에 고민을 했었다. 힘든 시술을 받는 나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싫었고, 혹시 모를 출장이나 외부 회의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병원 방문일과 중요한 업무회의가 겹칠 때마다 번번이 양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팀장에게 말했는데 지금도 이것이 옳은 판단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때가 있다.


시험관을 하면서 회사에 출근하는 게 특히나 고되고 힘들어졌다. 육체가 피로하니 우울감이 늘 기저에 깔려있었고 업무에 대한 성취욕구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일을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할 뿐이었다.


점점 궁금해졌다. 내 삶의 질은 이렇게 떨어지는데, 우리나라에 난임치료를 받는 부부 23만 명 중 절반인 여성 11.5만 명은 도대체 어떻게 직장생활을 무리 없이 지속하는 걸까? 직장을 관두고 임신 준비에 전념하나? 아니면 별거 아니라는 듯 의욕적인 직장생활이 가능한 슈퍼우먼들일까?


물론 난임부부를 위한 복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 가족수별로 기준 중위소득 180% 이하일 경우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보조금을 제외한 여타의 시스템은 여전히 미미하다. 사실 시술 과정에서 제일 필요한 건 돈이 아니다. 회복을 위한 휴식이다.


그 휴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버틸' 수 밖에 없다.


현재 법적으로 보장되는 난임 휴가는 1년에 3일, 그마저도 2일은 무급휴가다. 그냥 내 연차에서 2일 까는 거다. (받으나 마나 하다는 것)


올해 나는 15개의 연차 중에서 거의 8일을 병원에 썼다. 난자 채취 때는 복수가 차고 난소가 부어서 3일 동안 정상적으로 걷는 게 불가능했다. 과속방지턱을 넘어갈 때는 특히나 충격이 심하게 가해져 밑이 빠지는듯한 느낌이었다. 두 다리를 질질 끌면서 출퇴근을 하고 싶지 않아 3일간 연차를 썼고 이후 초음파 검사를 위한 병원 방문 때마다 반차를 쓰거나 점심을 거르고 갔다. 이식을 위한 연차도 아껴두어야 했다.


지난 1년간 낭만과 쾌락을 위한 휴가는 없었다.  


그래프 출처 네이버, 일러스트 쮸댕


여러모로 아이러니다.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추락하고, 국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백조의 예산을 쏟는데, 아이를 낳겠다는 젊은 부부들은 계속 감소하고, 난임부부들을 위한 복지는 너무나 미비하다.


그 많은 예산은 모두 어느 밑 빠진 독에 부어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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