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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쮸댕 Aug 27. 2022

병원이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들

주사보다 무서운 호르몬 파티

누군가 스치듯 흘린 말이 먼 훗날 인생의 중대한 선택에 영향을 줄 때가 있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선택할 때 그랬고, 돌이켜보면 시험관 결정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임신이 나와 먼 이야기였을 때에, 나중에 노력해도 안되면 시험관 수술해! 오히려 더 건강한 아기가 나올 수 있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치 그 길이 더 쉬울 수도 있다는 듯


시간이 흘러 병원에서 인공수정을 권유받았을 때 과거에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자연임신은 어려울 것 같은데 인공수정과 시험관 둘 중 하나를 택한다면 확률이 더 높은걸 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는 무엇이 더 힘든 과정일지 고려하지 않았다. 유산 직후 오로지 삶의 목표가 임신이 되어버린 사람의 선택지는 하나였다.


선생님께 시험관을 하겠다고 했다. 그때 병원에서는 시험관 과정이 여성의 몸에 미칠 영향들에 대하여 알려주지 않았다. 겪으면 알게 될 그런 것이었다.


그 후 과배란 유도부터 난자 채취, 이식을 결정하는 매 순간마다 맘스홀릭 카페나 블로그 글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증상들이 통계처럼 집계되었다. 이를 통해 예측할 뿐이었다.


예상된 고난은 힘을 잃는다, 구체적으로 표현된 두려움은 그 크기가 줄어든다 -에픽테토스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은 숭고하다. 시험관은 아기를 갖고 싶으나 자연임신이 어려운 부부를 위한 일종의 또 다른 선택지가 된다. 현대의학이 생명 탄생의 가능성을 높여준 셈이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 자연임신만큼이나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나 여성 몸속에서 일어나는 대자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과정은 너무나 고되다. 


처음엔 확고한 소망을 품고 시작한 사람마저도 몸과 마음이 지칠 수 있다. 어차피 할 수밖에 없는 거면 그 과정을 미리 알아서 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고통을 미리 예측한다면 받아들이는 게 한결 수월하다. 덤덤하게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주사와 호르몬 그리고 또 주사

시험관 한다고 했을 때 "그거 자기 배에 자기가 주사 놓는다는데 괜찮겠어?"라고 묻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도 시험관의 최대 난관은 주사 바늘을 찌르는 그 순간일 줄 알았다. 체했을 때 손도 못 딸 정도로 뾰족한 것이라면 기겁을 하는 나였기 때문에 최대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생리 2~3일 차에 병원을 방문했고 며칠 치의 주사(고날 에프)를 받았다. 학창 시절 생물시간에 배웠던 바로 그 '난포자극 호르몬'이었다. 평소보다 더 많은 배란을 유도하기 위해 맞는 주사다.


받아온 주사기들을 냉장고에 넣고 잔뜩 긴장하며 인터넷으로 고통의 정도를 검색해 보았다. 결론은 사람마다 아픔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 누구는 남편이 놔줬다고 하고 누구는 별거 아니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간호사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배의 지방층을 꼬집어서 수직으로 꾹 찔러 넣었다. 솔직히 그때  첫 주사는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이 정도면 할만한데?'라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난자 채취가 있기 전 병원을 한번 더 방문해서 초음파로 확인을 한다. 다행히 투여 용량과 호르몬제가 나에게 맞았던 것 같다. 적절한 수의 난포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때 확인된 건 14개 정도였다.


예상치 못했던 부분은 호르몬 과다 투여의 부작용. 주사 맞는 순간만 견디면 되는 게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배가 빵빵하게 불러오고 체중이 빠르게 늘었다. 20대를 통틀어 꾸준한 운동으로 적정 체지방을 유지해온 나였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불어나는 건 적잖은 스트레스였다.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분비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탓인지 티브이만 보면 눈물을 흘렸다. 정말 많이 울었다. 소파에서 오만상을 찌푸리며 엉엉 울자 남편이 휴지를 갖다 주면서 '확실히 호르몬 영향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일러스트 by 쮸댕

난자 채취 전 이틀은 요즘 말로 현타가 가장 크게 오는 순간이다. 소중한 아기를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버텨오던 지난 시간들이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시험관을 해야 되나?'


로 바뀌는 시점이다. 과배란 하겠다고 며칠 동안 배를 꼬집고 주사를 놓고 배는 빵빵하게 불러오고 몸은 무거워지는데 거기에다 조기 배란 억제제를 같이 놓는 거다. 비유하자면 난소에게 엄청난 업무량을 부과한 동시에 강제휴가를 줘버린 셈이다. 난소 입장에선 어쩌라고? 했을 거다. 만약 의식이라는 게 있었다면 미쳐서 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인내와 후회가 뒤섞인 일주일을 보내고 대망의 난자 채취 하루 전날, 그러니까 주사 마지막 날에는 다섯 개의 주사를 맞았다. 과배란 주사 1, 조기 배란 억제 주사 1, 밤에 난포 터트리는 주사 3개 (검색해 본 결과 사람마다 용량과 주사 수는 다르다고 함)


특히 난포 터트리는 주사 두 개를 맞을 때는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피부를 뚫는 느낌이 마치 겨울 이불을 뚫는 공업용 미싱 바늘 같았다.


그렇게 주사 왕이 되었다.


일주일간 내 배를 찌른 숱한 주삿바늘들이 빨갛고 시퍼런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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