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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08. 2024

그만하자 그만하자, 양치 잔소리가 들려

칫솔질을 부르는 마법의 주문

하루 3번, 식후 3분 이내, 3분 이상. 양치질하면 이내 생각나는 333법칙.

“양치질을 신경 쓰셔야 되어요. 이러다 이 다 상해요.”

 오늘도 이 말만 33번은 족히 한 것 같다. 이것은 3의 축복인가 저주인가. 환자가 내원할 때마다 AI처럼 반복하니 같은 출력만 내보내는 고장 난 챗  gpt가 따로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충치, 잇몸병 등 대표적인 질환들의 원인은 입 안 구석구석 쌓여 있는 음식물 찌꺼기인 경우가 많고, 우식(충치)을 일으키는 3요소는 치아, 박테리아, 영양분이다. 치아와 침에 섞인 박테리아의 경우 입 안에 항상 있는 것이니, 결국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음식물 찌꺼기를 제때 적절히 제거하는 일뿐이다.  



 “나는 집에서 양치질 밖에 안 해요! 정말 열심히 하는데..”

양치가 잘 안 되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속상함을 넘어서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것이 보인다. 그럴 때는 칫솔질 방법을 다시금 알려드리지만 운동처럼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거라 그 허들을 넘기가 쉽지가 않다.


불현듯 평생 동안 다이어트에 매진해 온 내가 단 한 번도 날씬해본 적이 없다는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 떠오른다.

“운동하세요.”,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속이 더부룩해 찾아간 내과에서 걱정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내가 할 수 있으면 진작했지.’ 입술을 툭 내밀고 반항하는 사춘기 소녀처럼 까칠해지길 여러 번. 마치 국영수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 서울대 들어가라는 말을 들은 고3 수험생의 느낌이랄까. 진료실에서 내뱉던 양치 잔소리가 똑같이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간다.




아이유처럼 양치 잔소리를 그만할 수는 없고, 나름 골똘히 묘안을 생각해 냈다.

저도 잘 안되고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압니다


이 말을 양치 잔소리에 떡하니 갖다 붙이면, 마법처럼 질풍노도의 사춘기 아니, 양치춘기의 환자들은 귀를 기울일 마음이 조금은 동하는 것 같다. “선생님도 그렇죠?” 의외의 동질감을 느끼며, 너도 나도 모두 어설픈 사람이라는 공감 포인트가 생긴다. 말 한마디에 인간미로 포장할 수 있고, 다시 검사할 치아에 낀 음식물 플라그가 조금씩 줄어들기도 하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럭키비키 아닌가.


그러나 진료실에서는 백발백중 마음을 여는 마법의 문구도 통하지 않는 한 곳이 있었으니, 같은 집에 거주하는 천방지축 어린이들에게는 아무리 얘기해도 들리지가 않나 보다. 300번 얘기해도 듣질 않으니 돌고 돌아 3의 저주인가. 가정용 AI 엄마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폭풍 잔소리 중이다. “빨리 양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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