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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05. 2024

죽이는 치료의 알 듯 말 듯한 비밀

신경치료, 그 신비롭고 은근한 이름의 오해

 치과를 찾는 이들의 가장 빈번한 질문 중 하나,

치아 살릴 수 있나요? 혹은 신경을 살리는 치료인가요?  


하얀 거탑의 주제가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치료실에서 자주 들리는 명대사가 반복된다.  신경치료라는 말에는 어딘가 낯선 불안감이 스며있는데, 그 말마따나 정말 많은 이들을 '신경' 쓰이게 만든다. 만약 밤잠을 설칠 정도의 통증이 온다면, 이는 치아의 신경인 치수에 염증이 생겼다는 강력한 신호이기에, 이른 아침 치과가 열자마자 부산행 좀비떼에 쫓기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뛰어 들어가 긴급 신경치료를 받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 치료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흔히 하는 은근한 착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신경치료’라는 이름만 듣고 마치 손상된 신경을 되살리고, 치아를 원상복구 시키는 과정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신경치료는 오히려 치아의 신경을 깔끔히 제거하는 데 가까운 과정이다. 염증으로 손상된 치수를 긁어내고, 세척하며 소독하는 번거롭고 불편한 절차가 따라오게 되는데, 이 설명을 들은 환자들은 대부분 당혹스러워하거나 심지어 공포에 빠지곤 한다. 일부는 진지하게 눈물을 글썽이며 치료를 망설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차분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완벽함을 갈망한다. 환자라면 누구나 깔끔하게 마무리된 치료를 원할 것이고, 우리 또한 모든 면에서 완전한 상태를 꿈꾼다. 가정에서는 사랑이 넘치는 부모이자 배우자로,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프로페셔널로, 또 한편으로는 건강하고 부캐 생활까지 열심히 챙겨서 하는(나의 경우 글까지 잘 쓰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 기대와 어긋난다. 오늘은 일이 잘 풀렸다면 내일은 가정에서 예상치 못한 갈등이 생기고, 오전에는 평화로웠다가 오후에는 마음이 시끄러워지기도 한다. 내 하루가 지킬 앤 하이드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기우뚱 거리며 겨우 중심을 잡고 버텨낸다.


그래서 '완벽함'이란 목표보다는, '온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완전히 새것 같은 치아가 아니라, 상황에 맞추어 온전히 기능할 수 있게 보완하며 살아가듯이, 부족한 자신을 수용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쌓아가는 치유의 조각들이 하루하루 우리를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당장의 불완전함에 좌절하지 말고, 내일의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오늘을 인정하는 일. 아마 그 작은 인정과 위로  너머에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은 덜 완벽하더라도 괜찮다. 신경치료처럼 아픔의 시간을 지나며, 그렇게 우리의 삶을 다시 정리해 나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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