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뚝! 엄마표 소고기국
요리는 못하는데 어떡하지. 이번주 글감을 받고 나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곤 계란 프라이에 밥 안치기 뿐인데. 양가 엄마들의 반찬과 시켜 먹는 반찬, 배달의 민족으로 버티고 살아와서 할 줄 아는 요리란 무엇인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머쓱하고 당황스러웠다. 부끄러운 손을 키보드 앞에 붙들어 놓고 내가 할 줄 아는 요리 대신 이 맘 때쯤 먹고 싶은 요리가 무엇인지 찾아 써보기로 한다.
추운 한 겨울 감기가 만연한 이때쯤 생각나는 음식은 뜨끈한 엄마표 소고기국이다. 버섯과 소고기가 왕창 들어있는 얼큰한 소고기국 한 그릇이면 식은땀 흘리던 독감이 훌쩍 떠나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중에서 사 먹는 소고기국에서는 느끼기 힘든 엄마표 소고기국. 칼칼하면서도 깊은 국물 맛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한 엄마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 감기로 끙끙 앓아누워있는 딸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끓여주었던 따뜻한 요리. 한 그릇 먹으면 더 먹고 감기 떨어지라고 두 그릇째 왕창 퍼주던 그 사랑이 추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 다시 기억난다.
이제는 훌쩍거리는 손주를 위해서 다시금 끓여준 국이 어찌나 정겹고 고마운지. 아이고 이제는 안 아픈 데가 없다며 굽은 어깨를 셀프로 두드리는 엄마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문득 레시피가 궁금해져 물어보면, "소고기를 대충 썰어서 볶고, 버섯 넣고, 무 넣고 대충 간 맞춰서 끓이면 돼."라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까이꺼 대충이라는 한 때 유행하던 말은 티브이에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요리 초보인 나로서는 물도 몇 컵 넣어야 하는지 종이컵으로 계량해서 넣어야 하기에 한 귀로 들었으나 그저 한 귀로 빠져나갈 수밖에.
안 되겠다. 내가 끓이는 건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희박하고 엄마가 끓여줄 때 먹어야겠다. 그런 기회를 자주 만들기 위해서는 먹으면서 찰진 리액션이 필수다. 다른 데서는 이런 맛이 안 난다. 정말 맛있어서 계속 생각난다. 최고다. 평소 입이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과묵한 내가 엄마의 식탁 앞에서는 연신 따봉을 외치는 수다쟁이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엄마는 신이 나서 딸내미 그릇에 턱 하니 한 번 더 소고기국을 푸짐하게 떠주니 말이다.
자식 키운다고 최소 30년은 뒷바라지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녀의 자녀까지 함께 돌보는 황혼육아로 10년은 훌쩍 보낸 친정엄마. 삭신이 쑤시지만 쉬고 있으면 이내 마음이 불편해져 여기저기 집안일을 찾아서 하시는 우리 엄마. 만날 때마다 투닥거리고 툭툭 던지는 경상도식 대화가 싫어 피해 다녔던 철없는 딸이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다시금 엄마의 사랑을 손끝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만 주오 그대여. 나의 수줍은 편지를 접어 게시판에 올려본다. 직접 만나면 왠지 모르게 어색한 표정으로 엄마가 해준 음식이 최고라고, 딸의 살갑진 않은 리액션이 단전에서 끌어올린 최대의 표현인 것을. 오글거리는 걸 못 참는 우리 모녀지간의 정이 따스히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소리 내어 연습해 본다. 사... 사... 스릉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