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이름표 하나 달아주세요

멈추지 않고 견딘 밤들로 만든 문장

by 지안

퇴근 후, 아이들을 재우고, 밀린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 불을 다 끈 새벽녘.

컴퓨터 앞에 앉는다. 피곤함은 목까지 차올랐지만, 마음은 여전히 비어있다.

썼다, 지웠다, 다시 쓴다.


그렇게 한 문장을 꺼내기까지, 수없이 고치고 지우는 과정을 거친다.


나는 치과의사다.

낮에는 진료실에서 수백 번 “아, 입 벌려 볼까요.” 말하고, 밤에는 내적 관종의 면모를 드러내는 창작자가 된다. 내 이야기를 담은 문장을 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당장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하고 싶어서 쓴다. 아니,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사람들은 종종 창작을 낭만이라고 말한다. 멋진 배경음악과 함께 단숨에 써 내려가는 영화 속 장면처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창작은 감성이 아니라 노동이다. 그것도 꽤나 육체적인.

어깨가 굳고, 목이 뻐근하고, 손목까지 저린다.

내가 만든 이 한 문장을 위해 삭제한 문장은 수백 개.

마음속 이야기를 뽑아내기 위해 버틴 시간은 수십 시간.

한 줄을 고르기 위해 매일 스스로를 의심하고, 포기하려다가 다시 돌아온다.

창작은 자기 자신을 붙잡고, 설득하고, 또다시 밀어내는 싸움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요즘은 이런 것도 AI가 다 해주지 않나요?”

“비슷한 글들 너무 많지 않아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보낸 새벽, 내가 견딘 시간, 내가 꺼낸 마음이 그렇게 쉽게 치환될 수 있는 걸까,

조용히 마음이 흔들린다.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시간이 없어서, 여력이 없어서, 아무도 읽지 않을까 봐.

하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조차 몰랐던 마음의 결이, 문장을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된다.

이건 나에게 증명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작업이라는 것을.


문장은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감정까지 따라 쓸 수 있을까.

감당해 낸 시간들이 천천히 빚어낸 것을 말이다.

누군가 그 시간들을 ‘그냥’, ‘허락 없이’ 가져간다면,

그건 단지 글이 아니라 내 마음 한 조각을 들여다보지 않고 옮기는 일이다.

작은 문장이지만, 그 옆에 이름표 하나는 꼭 달고 싶다.


이건 제가 만든 마음입니다.

이건, 제가 견딘 밤의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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