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질투는 나의 힘

동경과 시샘에 대하여

by 지안

육각형 아이돌. 노래, 춤, 인성, 외모, 유머, 지성까지 고루 갖춘 완전체들이 화면을 채우는 세상에서, 나는 육각형이 아니라 육각수다. 흥보가 기가 막힐 욕심으로 그득한 나란 사람. 한때는 선망하던 그들이 이젠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누구인가. 비교의 성지 대한민국에서 40년간 나고 자란 사람 아니던가. 비교가 일상이고, 경쟁이 습관이 된 나라에서 괜히 성장한 것이 아니다. 저울질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보니, 그 대상이 말도 안 되게 점점 커져가 멈출 수가 없다. 이제는 동네 친구, 직장 동료가 아니라 전국구, 아니, 글로벌 스타와 비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도 얼마나 심한지, 세계를 휩쓰는 BTS까지 시샘하게 될 줄이야. 나는 왜 그들처럼 하루에 2시간만 자면서 연습하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지 못했을까? 잠만보처럼 9시간을 내리 자고도, 과제를 완벽하게 못해내어 속상해했던 내가 우스울 지경이다. 시간을 쪼개 쓰며 자신을 갈고닦은 이들의 성공 앞에서 나는 나의 게으름과 평범함을 원망한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셈이지만, 어쩌겠는가. 질투란 그렇게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감정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질투가 마냥 나쁜 감정인 걸까? 슬그머니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나의 청개구리 심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질투는 곧 선망이고, 꿈이고, 반짝이는 세계다. 너무나도 부러워하는 그들은 내가 원하는 삶의 특정 요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반짝임이 내게 초조함으로 다가오는 건, 어쩌면 그 빛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쟁심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열망이라고 해야 할까. 이 복잡한 감정은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더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부러움이 없다면, 목표도 존재하지 않는다. 선망하는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동경과 시샘이 뒤섞인 이 감정은 단순히 나를 주저앉게 하는 족쇄가 아니라, 더 멀리 나아가게 하는 연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질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멈춰서 자책할 것인가, 아니면 한 걸음 더 걸어갈 것인가. 니버의 기도문을 읽으며 다시금 대답해 본다.


하나님,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가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지혜롭게 구분하고, 바꿀 수 없는 것에 괴로워하기보다 바꿀 수 있는 것에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일. 그리고 그 도전을 계속하는 것만이 성장의 원동력으로 선순환시키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질투라는 내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일깨우는 신호 속에서 길을 찾는 건 결국 스스로의 손에 달려있다. 그 나침반을 사용해서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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