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뜻은 좋았으나 전원 집단 탈진

by 지안

5월 4일, 어린이날 하루 전.

아이들이 사랑의 하츄핑 뮤지컬을 너무 보고 싶어 했다. 평소엔 늘 가족이 함께 공연을 보고 체험도 같이하는 편이지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예매할 때 문득 예전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저씨들은 원래 공연 안 들어간다니까?”
농담이었지만 묘하게 진심이 느껴졌던 말.

그래서 이번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공연은 나랑 애들 셋이서 보고 올까?”
남편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그게 낫겠다. 너희끼리 보고 와.”


공연이 끝난 후, 아이들이 동물을 보고 싶다고 했다. 마침 수달과 강아지가 있는 작은 실내 동물원이 근처에 있었다.

그때도 내가 먼저 물었다.

“표 세 장만 끊을까?”
남편은 또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나와 아이들 둘만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 순간, 나 혼자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은 말했다.
“그럼 당신이 애들 데리고 들어갔다 와.”
아뿔싸, 오늘은 결국 나인가 보다.


동물원 안에서 아이들은 정말 신이 났다.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고, 수달을 따라다니고, 눈이 반짝반짝했다.
너무 재미있었는지 집에 가자고 하자 둘째가 서럽게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아직 더 보고 싶단 말이야!”
아이들을 달래느라 진이 빠졌고, 하루 종일 아이들을 혼자 본 것 같은 피로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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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과는 다르게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이 서운해하며 하는 말.

나는 하루 종일 운전만 한 기분이야.

처음엔 억울했다. 나 혼자 애들 보고, 수발 다 들었는데 대체 뭐가 힘들었다는 거지?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다.
남편은 나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새로운 곳에 가는 걸 좋아하고, 남들에게 가봤던 곳을 자신 있게 추천해 주는 걸 즐긴다.
반면 나는 익숙한 곳, 조용한 시간을 좋아한다.
우리 둘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었고, 그걸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배려한다고 했던 선택들이 결국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하루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웃었다.
수달을 보고 반짝이던 눈,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졸린 목소리로 “오늘 너무 재밌었어” 하던 말.
그걸 떠올리면, 이 하루가 꼭 실패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부터 우리 가족은 이렇게 하기로 했다.

같이 하되, 각자의 리듬을 존중하기.
모두가 완벽히 만족하진 못해도, 함께 하려는 마음이 결국 우리 가족을 다시 하나로 묶어줄 거라고.

실수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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