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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Feb 19. 2019

꼰대들을 향해 외치다

희망이 상실된 사회.

"요즘 애들이 힘든 게 뭐 있다고 그래?"

"우리 때는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 다 배가 불러서 그래."


젊은이들의 힘듬을 논할 때 일부 꼰대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배경에는 '삶은 곧 물질적 풍요'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2030 세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린 세대다. 전쟁도 없고 어디서든 인터넷이 가능하며 24시간 환한 도시, 어디든 상주해 있는 편의점 덕에 밤에도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면 무엇이든 가능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기차로 3시간이면 도착하는 시대.


하지만 물질적 풍요는 삶의 질을 올려줄 뿐, 삶 그 자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세계 행복지수만 봐도 물질적 풍요가 곧 행복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독일보다 코스타리카가, 미국보다 캐나다가 높다. 미국은 꽤 괜찮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음에도 오히려 그 순위가 하락했다. 20대 자살율은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삶의 질이 올라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것이 과연 더 나아진 삶일까?


한국의 2030이 겪는 문제는 사실 이보다 더 심각하다. 단순히 행복의 높고 낮음을 떠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윗 세대는 한국의 눈부신 성장을 눈으로 목도했고 몸으로 체감했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한국은 경제에서 정치까지 세계에서 손꼽을 만한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90년대 후반으로 넘어서며 IMF로 좌초했으나 그마저 국민의 힘으로 이겨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과 함께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힘을 모으면 할 수 있다.'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이 사실을 다름 아닌 국가가 보여준 것이다. 


'노력'이란 이름이 찬란히 빛나고 희망이 있기에 직장에, 국가에 목숨을 걸었다. 희망이 있는 인간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몸이 힘들고 뼈가 빠지지만 열심히 살면 그에 맞는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였던 것이다. 


그때는 적금만 부으면 충분히 재산을 불려 가는 게 가능했다. 그러니 힘들다가도 통장만 보면 힘이 벌떡 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부모세대는 자식들을 키워냈다. 이는 대단한 일이며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사회는 변했다.


2030이 머물러 있는 지금 2010년대 한국에 그런 미래는 없다.


적금으로 모을 수 있는 돈은 너무 적다. 전자화폐가 뜬 것이 과연 일확천금 때문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열심히 살아선 돈을 모을 방법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로또 시장이 증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적금 통장을 보며 힘을 냈지만 지금은 통장을 보면 힘이 빠지는 시대다.


티끌은 백날 모아도 티끌인 세대가 된 것이다.


거기다 이전과 달리 국가는 이들에게 청사진을 보여준 것이 없다. 2000년대 초반 이후 한국 경제는 성장기가 끝나고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노력'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던 시대가 끝난 것이다.


'부채가 줄어들고 국가 재정이 건전해졌다.' 

'수출입 지표가 좋아졌다.'


그러면 뭐하는가? 이런 경체 척도는 대기업들의 성장, 부자들의 더 큰 부의 축적으로 이뤄졌을 뿐, 서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겉으로 보이는 경제 성장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고 빈익빈 부익부만 초래했을 뿐이다.


기업은 성장하는데 사람은 뽑지 않는다. 기업은 사람을 부품으로 취급한다. 기껏 힘들게 일하고 취직하면 45세쯤에 '돈 줄 때 나가.'라는 소리를 듣기 일수다. 적금을 부어봤자 목돈을 쥐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생 직장은 사라지고, 국가는 점점 나빠진다. 뭘 위해 직장에 충성하고 국가에 충성하란 말인가?


바로 '희망이 없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누군가는 '그래도 노력해서 성공하는 이도 있지 않나?'하고 말할지 모르겠다.


물론 있다. 하지만 결국은 확률 문제다. 예전에 그런 사람이 20%에 육박했다면 이제는 5%도 되지 않는다. 거기다 그것도 어느 정도 자본력과 배경이 받쳐줘야 하거나 투잡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세대를 향해 '배부르면 된 거 아니냐?'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다.


꼰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뭔가를 이뤄냈다. 그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그들의 삶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걸 간과하고 있다. 그들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욜로'를 단순히 '낭비'라고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력이 보상받기 힘든 사회에 어떻게 행복을 찾아보려는 그들에게 무턱대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일부 꼰대들의 시각으로 이런 사회 현상을 단순히 고생 안 한 젊은이들의 투정만으로 볼 게 아니라 어떻게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시대는 돌고 돈다. 이런 식으로 인구가 줄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일본처럼 일자리가 넘치는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노력'이 빛나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고 매몰차게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사회를 만들주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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