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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Mar 05. 2019

낳지 않을 자유와 권리

비출산은 죄가 아니다.

출산과 육아는 대단한 일이다.


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모든 이들은 당연히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것, 그리고 이를 길러내는 것. 얼마나 성스럽고 아름다운 일인가? 문제는 그것을 국가가 또는 타인이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출산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국가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이 감소한다는 점이다. 


국민이 감소하면 국력이 감소한다. 국방력, 재정, 내수 시장 전체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상대적으로 세금을 내는 이는 줄어들고 국가가 부양해야 할 노인은 늘어나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국가는 어떻게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건 국가 입장에서의 이야기다.


그럼 이제 국민, 또는 한 개인에게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우린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다양할 것이다. 결혼하고 시기가 그럴 때니까, 노후를 생각해서, 또는 더 끈끈한 부부생활과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비출산을 원하는 이들은 이 답변에 모두 반대할 것이다. 결혼과 출산의 시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아이가 노후를 더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 아이가 이혼해야 하는 순간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며, 오히려 가정의 불화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부부와 나를 위해서 낳는 것이 과연 아이에게 좋은 일인가 하는 의문도 따른다. 아이는 태어남의 선택권이 없으니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출산. 육아의 이점과 단점을 저울에 올려놓고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부와 개인의 행복이다. 


국가는 부부와 개인의 기초적 삶까진 보장해 줄지 모르나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출산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출산과 육아에 신중해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국가는 출산을 장려하나 그로 인해 힘들어질 경우 짐도 져주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가 안정적인 육아가 보장된 사회가 아니란 점이다.


매번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기는 하지만 모두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법이 있어도 생활에 적용이 안되고 아무리 보조금을 줘도 빠르게 오르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생활이 안정적이어도 힘든 게 육아인데 이런 상황에 누가 아이를 놓겠는가? 태어나지 않을 아이보단 내가, 우리 부부가 소중하다는 생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동물도 환경이 힘들어지면 개체 수 조절에 들어간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은 인구 조절 중인 거다.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취업할 자리도 없고, 살 집도 없으니 말이다.


저출산 문제로 시름하던 일본은 여전히 미미하긴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출산율이 늘고 있다. 왜일까? 가장 근본적인 실업난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실업난이 해결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인구 감소'에 있다. 일할 인구가 줄어드니 당연히 일자리가 늘어나는 거다.


난 우리나라도 이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 이 상황에서 저출산을 해결할 방안은 없다. 그저 시간이 답일 뿐. 


이런 현실에서 비출산, 비혼을 선택한 이들에게 비난을 가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같은 공무원이라도 출산을 하면 공무원 아파트에 2년 더 있게 해 주고 비출산이면 나가게 하는 이런 정책이 옳은가 되묻고 싶은 이유다.


출산과 육아를 존중하는 만큼 비출산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출산과 육아는 오롯이 부부가 서로 합의해서 정할 문제고 누구도 그것을 비난하거나 한심하게 봐서는 안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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