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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Mar 08. 2019

미디어와 PC주의의 잘못된 만남.

PC를 이야기하는 잘못된 방식.

PC운동은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지양하는 운동이다. 요즘은 단순히 표현을 넘어 그 어떤 편견과 차별을 배재하자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난 그들의 생각에 동의한다.


어떤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 성적 취향, 성별로 인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로 평등하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개인의 가치관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맹점이 있다. 바로 '싫어함'에 대한 자유에 관해서다.


개인이 개인을 싫어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아니, 이유 없이 싫어하기도 한다. 이것도 일종의 취향 차이이며 자유다. 물론 싫다고 돌을 던지거나 폭력을 가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난 저 사람이 싫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과연 잘못인가? 이게 범죄인가?

동성애를 예로 들어보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특정인이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일을 잘하는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거나,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그들을 왕따 시킨다면 그것은 회사의 잘못이다. 하지만 어떤 이가 단순히 '난 동성애가 싫어'라고 한다면? 그게 문제일까?


몇몇 삐뚤어진 PC운동 지지자들은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을 모조리 '반 PC주의자'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인류에 해가 되고 사회에 악인 것처럼 공격한다. 


'난 김태희가 싫고 전지현이 좋아.'라고 했다고 이 사람이 순식간에 '김태희 혐오론자'가 되어 버리는 거다.


차별과 편견을 배제하자고 외치며 본인들이 또 다른 차별과 편견을 만든 꼴이다.


미디어에 적용되는 PC주의도 마찬가지다. 


정작 그 미디어에 필요한 부분은 뒤로 밀어놓고 PC만을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이때 누군가가 '뭐야? 왜 필요한 건 없고 PC만 있는 거야?"라고 주장하면 바로 '반 PC주의자'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가르친다. 


'넌 PC혐오론자니까 교육받아야 해.' 


그리고 강요하고 또 강요하며 상대의 머릿속에 강제로 밀어 넣으려 한다. '왜? 그게 빠지고 PC만 있냐?' 고 주장했지 '누굴 차별하자'라고 주장한 게 아닌데 말이다. 


PC만 들어갔다고 그게 좋은 미디어가 아니다. 미디어의 본질에 충실하며 메시지를 잘 버무려야 좋은 미디어인 거다. 물에 좋은 김치만 넣었다고 그게 좋은 김치찌개는 아니지 않나.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가 있다. 차별받던 흑인 여성들이 NASA의 우주 비행 프로젝트에 참가해 성공시킨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PC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히 그들이 받았던 차별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것들을 이겨낸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게 된다.


특히 이 영화는 백인이라고, 남성이라고 전부 악인으로 몰지 않는다. 다양한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무엇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인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원더'도 마찬가지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가정, 그리고 그 주변인들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외모는 바꿀 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죠.' 


영화 속 이 대사가 모든 것을 말한다. 그리고 뼈저리게 공감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무턱대고 남자를 여자로 바꾸고, 백인을 흑인으로 바꾸고, 차별받는 누군가를 쭉 나열하듯 보여주고, 소수자를 끼어 넣고 '자, PC야. 이게 올바른 거니까 공감해.' 이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진짜 PC를 미디어에 잘 접목하여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진 영화들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기본과 완성도이다. 


이 두 가지가 탄탄한 상황에 메시지를 녹여내는 거다. 메시지를 넣으려고 기본과 완성도를 포기하거나, 메시지를 살리려고 억지로 미디어를 이용하면 그 결과는 뻔하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주객이 전도된 미디어를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거기다 그 문제를 지적하면 '너희가 틀렸어.' '너희가 무지한 거야.''PC인데 왜 싫어해?'라고 해버리니 오히려 반감만 높아지고 갈등만 깊어지고 있다. 

'캡틴 마블'이 개봉했다.


이 영화에서 페미니즘은 그다지 특별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딱 모두가 생각한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페미니즘 영화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홍보 시 '여성 히어로'라는 문구를 밀어붙였다. 히어로면 히어로지 왜 그리 '여성 히어로'를 강조했는가? '여성 히어로' 이 문구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 


이 영화보다 훨씬 페미니즘을 세련되게, 깔끔하게 표현한 '원더우먼'은 그냥 '원더우먼'이었지 '최초의 DC 여성 히어로'가 아니었다. 그냥 보여줬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첨언하자면 갤 가돗도 미스 캐스팅 논란이 있었다.

어설프게 페미니즘 영화의 탈을 쓰려던 '캡틴 마블'은 배우의 경솔한 언행과 함께 이 불필요한 강조로 영화에 대한 평가가 객관성을 잃고 완전히 좌초됐다. 페미니즘 평론가들은 페미니즘 요소가 적다고 혹평하는 상황이다.


사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것이 발전적인 방향인지 난 모르겠다. 한국만이 아니다. 이 문제는 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고 세상은 완전히 전쟁터가 돼버렸다. 중간은 없어지고 극단화만 가속되고 있다.


PC운동의 취지에는 지극히 공감한다.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우린 모두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혐오적인 용어가 사용되는 것도 당연히 지양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 문제다. '동등하자.' '차별하지 말자.' 소리치며 조금이라도 다른 성향을 드러내면 무참히 공격하고 짓밟는다. 취지가 좋다고 모든 행동이 용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나쁜 취지로 시작된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결국 그를 행하는 과정에서 변질될 뿐이지.


강요가 아니라 설득하고 대화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이끌어내야 함을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의 감정과 취향, 의견을 존중해야 함을 모두가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좋겠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으며 사회는 더불어 이뤄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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