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한직업
한국의 코미디 영화는 엄청난 단점을 가지고 있다.
상영시간 90분 중 60분을 웃기다가도 무조건 20분은 울리려 한다는 점이다. 흔히 이걸 '한국식 신파'라고 한다.
이 때문에 웃으려 영화관에 갔던 관객은 울면서 영화관을 나온다. 한국 영화계는 이 '한국식 신파'가 없으면 영화가 안된다는 믿음을 가진 듯 늘 코미디에 이걸 첨가했다.
예를 들어 '7번 방의 선물'이 어떤 장르의 영화일까? 묻는다면 대부분 슬픈 영화라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의 장르는 엄연히 '코미디'였다.
참 웃긴 일이다. 관객들을 어떻게 울릴까 고민할 시간에 코미디에 더 고민했다면 훨씬 좋은 코미디 영화가 됐을 텐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병헌 감독의 '스물'은 좋은 코미디 영화였다.
물론 막판에 등장인물들의 진지한 로맨스나 가정 형편 등이 부각되며 무거워지긴 했으나 이 정도면 한국 코미디 영화 중에서 그나마 '코미디'라는 기본에 충실한 영화였다.
그리고 이때 잠재력을 보여준 이 감독이 드디어 해냈다.
코미디, 본질에 충실하다.
극한직업의 장점은 코미디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비록 개연성에서는 힘이 좀 떨어졌지만 웃음만은 확실히 잡았다.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 웃음의 포인트를 살리고 놓치지 않으려 한 노력이 느껴졌다.
특히 한 박자 빨리, 또는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오는 말들이나 행동, 그리고 찰지고 귀에 쏙쏙 감기는 대사까지 감독이 이전 영화에서 보여준 코미디 센스가 더욱 살아난 느낌이었다.
이것이 코미디 연기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코미디 연기도 돋보였다.
특히 그동안 연이어 흥행에 아쉬움을 남겼던 류승룡이 여기서는 완전히 제 옷을 입은 것처럼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광해'의 허균,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의 장성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느낌이랄까?
류승룡과 한 팀으로 출연하는 진선규, 이하늬, 이동휘, 공명도 모두 개성을 유지하며 완벽한 케미를 보여줬다.
거기다 신하균은 코미디 영화 안에서의 악역을 완벽히 소화했다.
신하균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악역의 잔인한 면을 보여주면서도 코미디 톤을 유지하여 관객이 느낄 무거움을 줄여주었다.
그 덕에 관객은 잔인한 장면이 나오고 악역끼리 충돌하는 상황에도 영화의 코미디 감각에 따라갈 수 있었다.
악역으로의 카리스마와 코미디 영화의 웃음, 이 균형을 완벽히 잡는 신하균을 보며 다시 한번 이 배우가 대단한 배우라는 걸 느꼈다.
예상치 않은 시원한 액션
극한 직업을 보고 온 많은 관객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범상치 않은 액션에 관해서다.
후반에 액션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부분이 예상외로 괜찮다. 특히 지금껏 웃음을 주던 배우들이 화끈한 액션을 보여줄 때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거기다 이 진지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에서도 감독은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소소한 영화의 패러디도 있으니 눈여겨본다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우린 코미디 영화를 보며 웃고 싶다.
울려고 코미디 영화를 고르는 관객은 없을 거다.
관객은 힘든 일상에 시원하게 웃고 싶어 코미디 영화를 고른다. 그런데 지금껏 한국 영화는 이런 관객의 마음을 배신했다. 억지로 코미디를 보며 눈물을 쥐어짜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외국 코미디 영화를 보자니 외국 문화를 몰라 선뜻 웃을 수가 없다. 지금껏 한국 관객들은 이런 딜레마 속에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가뭄의 단비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천만이 넘는 관객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아닌가 한다.
'마지막 장면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웃게 만들어준 영화.'
이를 계기로 한국 영화에서 '신파'에서 벗어난 이런 코미디 영화가 더 늘어나길 기원한다. 이 힘든 세상에 코미디를 보면서까지 관객이 울어야겠는가?
코미디는 뭐라 해도 웃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