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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Apr 10. 2019

시리도록 뜨거운 치정극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리뷰

사극은 참 다루기 힘든 분야다. 특히 가상이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할 때는 더 그렇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할 경우 관객은 그 결말을 알고 있을 확률이 크다. 그러니 사극은 기본적으로 스포일러를 깔고 이야기를 진행할 수 밖에 없다.


'사도'에서 사도세자가 죽는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남한 산성'에서 조선이 굴복한다는 것 역시 이미 정해진, 바꿀 수 없는 역사이며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정해진 사실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없다. 


그래서 사극은 무엇보다 다루는 이의 역량이 중요하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극 영화다. 


하지만 감독은 이 실화에 자신의 감각을 부여해 흥미롭게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감독만의 건조하면서도 섬세한 시선.


사실 요르고르 란티모스 감독이 사극을 연출했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요르고르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는 늘 독특한 상상력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실화라는 틀에 갇힌 사극을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감독은 아주 멋지게 자신만의 사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영화는 요르고르 란티모스의 영화가 그랬듯 무미건조한 톤을 유지한다. 어떤 이가 담담히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속도감은 꽤 빠른 편이다. 그리고 전작 '킬링 디어'처럼 관객을 철저히 관조자의 위치에 앉혀둔 느낌이었다.


이런 요소들은 자칫 관객과 영화 속 이야기, 등장인물들 사이에 벽을 만들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감독은 적절하고 섬세한 묘사, 독특한 연출을 통해 이 부분을 완벽히 보완했다. 

하나의 컷도 버릴 게 없으며, 전부 유의미하게 살렸다. 그 덕에 빠르게 흘러가는 상황에서도 등장인물의 내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변화에 따라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빠뜨릴 수 없었던 부분이 바로 카메라다.


감독은 카메라를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와이드 화면과 볼록한 화각을 통해선 관객에게도 성의 고독한 분위기와 위압감을 전달했고, 갑작스러운 클로즈 업을 통해선 인물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런 요소들로 인해 관조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었다. 


#불꽃 튀는 연기 대결


엠마 스톤, 레이첼 와이즈, 올리비아 콜먼 세 사람의 연기 또한 매우 빛났다. 위와 같은 연출, 묘사가 가능했던 것도 결국 세 사람의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로 대치하는 장면이 많은 엠마 스톤과 레이첼 와이즈는 변화하는 각자의 위치와 감정을 팽팽한 긴장감으로 살려냈다. 침대에 누워 나가는 사라를 보던 애비게일의 눈빛은 관객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빛난 것은 올리비아 콜먼이었다. 앤 여왕을 맡은 올리비아 콜먼은 매우 복잡하고 자칫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 캐릭터를 완벽히 연기했다. 


유아스럽지만 순수하고, 정이 많지만 제멋대로인 앤 여왕의 복잡함이 올리비아 콜먼을 통해 완벽히 표현되어 눈 앞에서 살아났다.


#잘 섞인 매력적인 주제와 메시지


영화는 사랑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꽤 많은 주제를 품고 있고,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이런 경우 감독이 욕심을 내면 몰아치는 메시지와 주제에 관객이 지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감독은 이것들 매우 잘 섞고 배치하여 담백하게 표현했고 그 덕에 무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주제구나' 생각하면 '이런 주제일 수도 있겠구나' 하게 되고, 하나의 메시지를 찾았다 싶으면 다른 메시지가 보이는, 그런 매력이 있는 영화였다. 


#총평

-대중에게도 인정받을만한 마니아 요리사의 요리.


이 영화를 보고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떠올랐다.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누군가에게 추천하기 편한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매력적이지만 하드하고 어두운 면이 많았는데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분위기와 연출은 살아있으면서 누군가에게나 추천하기 좋은 그나마 편한 영화였으니까.

이번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도 마찬가지다. 


요르고르 란티모스 감독은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영화를 주로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분위기는 가져가되 누구나에게 편히 추천할만한 작품을 만든 느낌이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으로 말이다. 


나 역시도 이전보다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말이다.


이 영화는 어찌 보면 '사랑과 전쟁' 같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거기에 끼어든 새로운 사랑, 이로 인한 질투와 갈등.


 여기에 정치라는 주제가 곁들여져 이야기는 한층 치열해지고 냉혹해지며 격정적이 된다. 순수한 사랑보다는 욕망이 깃든 사랑이 더 처절하고 간절한 법이니까.

'거짓 없이 솔직하지만 공감하지 않는 사랑.'

'공감하고 슬퍼하지만 거짓이 깃든 사랑.'


감독은 정치 파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답을 내려주지만 이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답은 내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두 가지가 다 틀렸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욕망으로 한 없이 시리지만 또 그만큼 사랑으로 뜨거운 세 여자의 이야기가 참 매력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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