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열매는 쓰다.
인내는 인생에서 참 중요한 부분이다.
참을 인이 석자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역사에서도 인내를 통해 단 열매를 딴 이들이 많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내하고 버틴 끝에 일본을 손에 놓고 막부를 세웠다. 삼국지의 유비도 고난을 견디고 견뎌 촉나라를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런 거창한 대의를 떠나 사회생활이나 연인, 부부 관계에서도 인내는 중요한 덕목이다.
한 번의 인내로 다툼과 갈등을 피하고 수월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미지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예의 바른 사람,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인내할 일이 너무 많아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친구, 그다음에는 연인, 이후에는 부부 더 나아가 직장 동료와 상사 나중에 이르러서는 나의 자식을 상대로까지 우린 인내하고 견뎌야 한다. 이 정도에 이르면 내가 인내를 하는 건지 세상이 내게 인내를 강요하는 건지 조차 모를 지경에 이른다.
그래도 인내를 덕목으로 배운 우린 참고 참는다. 소심하거나 내향적인 성격인 경우는 더욱 참고 참는다.
'그래, 나만 참으면 돼.'
'내가 더러워서 참는다.'
'내가 참아야지 어쩌겠어?'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한다. 하지만 속이 쓰리고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참으면 나아지겠지 하지만 또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가슴 아픈 점은 이렇게 견디고 견딘 나의 인내를 상대가 대소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인내도 그러하다 '인내가 계속되면 상대는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한다. 처음이야 고맙다고, 덕분에 살았다고, 잘 참았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 고마움은 잊어버리고 어느새 참는 이의 인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특히 회사 상사도 아닌 동기나 연인, 가족까지 나의 인내를 당연하게 여길 때는 정말 난감할 수밖에 없다.
점점 내가 일을 떠맡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나의 희생이 당연해진다. 서로 좋자고, 나하나만 참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그렇게 돌아오면 참 인생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아니, 잘 참다가 왜 그래? 오늘 이상하네.'라는 소리를 듣는 단계에 이르면 '정말 내가 호구로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참으면 참을수록 속은 곪아가는데 알아주는 이조차 없다.
나의 인내가 상대에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는 동안 마음속 상처는 하나 둘 늘어나 이젠 흉터로 남아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일순간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 마음속 폭탄이 터져버린다.
물이 끓어 넘치는데 그걸 뚜껑으로 덮어둔다고 물이 안 넘칠까? 물은 결국 뚜껑을 비집고 나와 전자레인지를 적시고 주변을 엉망으로 만든다.
참고 참다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상대와의 다툼이 됐든, 나 혼자의 고통이 됐든 결국 참다 터진 상황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는 엉망인 경우가 많다.
인내의 열매가 달았던 것은 서로 간의 배려가 있고, 존중이 있고, 남을 생각할 여유가 있던 때의 이야기다. 지금 우린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힘든 사회에 살고 있다.
결국 내가 날 챙기고 봐주지 않으면 누구도 날 생각해 주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참을 수 있을까? 그 선을 정해놓고 내 감정을 먼저 챙기는 게 중요하다.
만약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길 경우 난 그걸 미리 적어두거나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상대에게 말한다. '이런 이런 부분은 이런 면에서 조심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물론 순간 서먹해질 수도 있고 상대가 서운해할 때도 있다. 하지만 참고 참다 터져 서로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것보단 이게 나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상대도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여기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면 상대와 난 더 가까워지고 편해질 것이다.
속이 그나마 풀리는 건 덤이고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다.
인내가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어버린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참을 때는 참아야겠지만 무턱대고 참으면 나만 힘들고 나만 지치게 된다.
지치기 전에, 더 아프기 전에 나부터 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