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11년을 돌아보다.
마블이 11년을 그려온 이야기의 한 장이 막을 내렸다.
완결된 이야기도 있고,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도 남았다. 하지만 이 시점에 마블 영화를 한 번 쭉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남은 여운도 가시고 추억도 되새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사실 아이언맨이 개봉하기 전에 아이언맨에 대해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당시 알려진 히어로는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정도였고 좀 더 포함해봐야 원더우먼이나 헐크 정도였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이언맨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개성 강하고 입체적인 주인공'이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는 그때까지 대중이 생각하지 못한 히어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거만하고, 가벼우며, 입체적이다. 정의롭지만 무겁지 않고, 제멋대로이면서 매력이 넘친다.
이후 히어로 영화의 역사를 바꾸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연 'I am Iron Man' 은 토니가 기존 히어로와 어떻게 다른지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대사가 아닌가 한다.
이 영화를 통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탑배우가 됐다. 당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내한했을 때 언론의 반응과 이번에 내한했을 때의 언론 반응을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그뿐이 아니라 마블은 영화계에서 DC의 인기를 뛰어넘었으며 별 인지도가 없던 아이언맨은 가장 인지도 높은 히어로 중 하나가 됐다.
물론 마블도 평탄한 길을 걸은 것만은 아니다.
'인크레더블 헐크'와 '토르 : 천둥의 신'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으며 '아이언맨 2'는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평가는 1편에 비해 많이 좋지 않았다.
'퍼스트 어벤져'의 경우 탄탄한 서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아이언맨에 비하면 심심한 액션, 너무 강한 미국적 색깔로 인해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마블은 한 걸음, 한 걸음을 닦았고 영웅들의 기원을 다루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어벤져스'가 개봉했다.
비록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찬찬히 각 히어로의 기원을 설명한 덕에 여기서는 빠졌던 부분을 보충하고 캐릭터를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 같은 경우는 본인의 영화가 아니라 이 '어벤져스'를 통해 비로써 캐릭터가 완성됐다.
아이언맨 2에서부터 터져 나온 '빌런을 일회용으로 소모한다'는 비판도 토르의 빌런이었던 로키를 다시 등장시켜 매력적으로 표현하며 해결했고, 처음으로 타노스를 등장시키며 큰 그림을 그린 것도 이때부터다.
마블은 순탄하진 않았지만 끈기 있게 준비했고 이것이 결국 지금 DC와 마블의 격차를 갈랐다. 이 어벤져스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면서부터 마블은 불패신화를 쓰기 시작한다.
일부에서는 이 '어벤져스'가 마블의 정점이 될 것이며 이후 히어로 영화의 인기는 내리막이 되리라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블은 묵묵히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쌓아갔다.
마블이 이야기를 더 확장하기 위해 선택한 히어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였다. 비록 스페이스 오페라를 즐기지 않는 한국에서는 마블 영화치고 큰 재미를 보지 못했으나, 이 영화는 관객과 평단 양 쪽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얻어내며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했다.
이후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통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준비를 마친 마블은 여기서 '앤트맨'을 개봉시킨다.
사실 앤트맨은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다. 마블은 앤트맨을 2011년에 개봉시키고자 했으나 애드거 라이트 감독이 자신의 스케줄로 인해 이를 미뤘고 이런저런 진통 끝에 결국 감독이 교체됐다. 감독이 교체된 영화는 항상 불안요소를 안고 있는 만큼 팬들은 이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또한 앤트맨이 독특한 히어로이기는 하나 그 능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마블은 자신만의 색으로 가벼우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 개봉한 '시빌 워'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았고 이에 부응했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각자에게 정당성을 줬고 빌런이 빌런에서 끝나지 않게, 히어로가 히어로에 그치지 않게 표현해냈다. 수많은 영웅의 갈등을 '어벤져스'를 통해 쌓아 온 노하우를 통해 훌륭히 스크린에 펼쳐냈다.
또한 블랙 팬서와 스파이더맨을 등장시켜 세대교체의 출발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블랙 팬서와 스파이더맨이라는 메인 히어로를 이전과 달리 기원 부분을 과감히 드러내고 여기서부터 보여주는 색다른 행보를 선택했는데 이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스파이더맨은 이미 그 기원이 너무 많이 알려졌고, 블랙 팬서는 기원을 다루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대신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을 등장시켜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같은 구도를 연출해 앞으로 있을 세대교체를 명확히 했고, 블랙 팬서는 주인공이 왕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반면 기원 설명이 꼭 필요한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전의 방식대로 이야기가 좀 쳐지더라도 히어로의 기원을 충실히 다루는 데 집중했다. 대신 시각적 효과를 통해 새로움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거의 새로운 시리즈처럼 탄생한 작품이 있는데 바로 '토르 : 라그나로크'다.
토르 시리즈는 1, 2편 모두 평가나 흥행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의 시리즈로 태어났다.
이는 과감했지만 훌륭한 시도였고, 결과가 이를 증명했다. 또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일신한 덕에 훨씬 자연스럽게 이 토르 시리즈가 '인피니티 사가'에 녹아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원래 유머러스한 헴스워드의 성격도 이 영화를 통해 더 잘 살아났고 무엇보다 우주 친구들과의 캐미 역시 아주 좋았다.
'인피니티 사가'로 묶인 한 장이 끝이 났다. 이후 개봉할 '스파이더맨 : 파 프롬'은 사실 이미 흥행이 보장됐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11년간 마블을 따라온 관객들은 '엔드 게임'을 본 후 정말 큰 대장정을 마친 듯한 감정에 빠질 것이다. 간절히 기다렸고 꿈꿨던 만큼 대장정을 마친 순간, 누구나 열정이 식고 마음이 예전 같지 않기 마련이다. 마블은 이들의 마음속 불씨를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특히 이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서 여기까지 따라온 이들도 있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장이 끝난 만큼 새로운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아야 한다. 마블 시네마는 11년을 지나며 마니아적인 성격이 짙어졌다. 이는 명확한 마블 시네마의 한계다. 당장 마블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면 이 '엔드 게임'을 이해하고, 이 이야기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팬의 유입은 필수다.
마블은 지금껏 잘해왔다. 불가능한 일이라 평가받던 것도 보기 좋게 해냈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지만 그 우려를 늘 성과물로 불식시켰다. 우려만큼 마블의 앞으로 11년이 기대되는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확한 사실은 우리는 지금, 마블의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