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은 바닷속으로 잠수, 대화는 자기 이야기만 폭격하던 남자
데이트 통장남과 이별 후, 나는 5살 많은 회피형 잠수부를 만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했던 친구의 소개였는데, 사실 초반에 그의 프로필을 보고는 전혀 끌리지 않았다. 수많은 연극 무대 위 사진과 몇 장의 거울 셀카… 딱 봐도 운동이 취미인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큰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 자리에는 의외로 멀끔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코로나 시기라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이게 바로 나의 고질적인 문제다. 나는 금사빠다. 연극 사진으로 도배된 프로필만 봐서는 연극 배우인 줄 알았는데, 막상 얘기를 나눠보니 직업은 번듯한 회계사였다. 그 반전 매력에 더 푹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상 신호는 초반부터 있었다. 첫 만남에서 무려 3~4시간 동안 자기 이야기만 떠들어댔다. 본인 말로는 다른 소개팅녀들에게 “본인 얘기만 너무 많이 하시네요. 저한테 궁금한 건 없으세요?”라는 피드백을 자주 받았다고 했다. 도망가라는 신호를 스스로 주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며 더 빠져들었다.
연락을 이어가면서 그는 중간중간 잠수를 탔다. 아침에 메시지를 보내면 저녁 9~10시가 돼서야 답장이 오는 식. 젠장, 여기서 그만뒀어야 했다! 친밀해진 뒤에는 늘 “나는 대단한 사람인데 회사가 날 몰라준다”는 불평을 쏟아냈다. 하루종일 연락은 두절인데, 밤 11시쯤 전화를 걸어 1~2시간씩 하소연을 퍼부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걸 다 들어준 게 더 미쳤다.
그와의 여행 스타일도 아주 독특했다. “전 세계 몇 개국, 몇 개 도시를 갔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며, 국내 여행도 포항 → 경주 → 울산 → 부산 → 통영… 이런 식으로 하루 안에 다 돌았다. 그렇게 좌표 찍듯 달린 걸 마치 트로피처럼 여겼다. 덕분에 교대 운전을 해도 졸음과 맞서 싸우며 미련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런데도 주말마다 그와 함께한 여행이 즐겁게 느껴졌던 건, 그가 평소에 워낙 잠수를 많이 타서 직접 마주 앉아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대화는 없었다. 서로 나이도 있고, 나는 여러 번 그의 어머니를 찾아뵙기까지 했는데,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단둘이 있을 때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안기만 했다. 개빡치게.
평소에도 서운함을 표현하면 그는 늘 묵묵부답이었다. “내가 서운하다는데 이해는 하냐?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냐?”라고 다그쳐야 겨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도 그 한마디가 반가웠다니, 지금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딴청을 피우거나 갑자기 이상한 동물 소리(?)를 내며 대화를 피했다. 결국 나는 초강수를 두었다. “나는 미래 계획이 있고, 네 생각이 다르다면 나도 고민을 해봐야겠다.” 그는 “여행 다녀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개소리 같은 농담만 늘어놓았다. 다시 “그럼 언제 이야기할 거냐”고 묻자, 그 뒤로 2주간 잠수를 타버렸다. 결국 이별은 내 입에서 나왔고, 그는 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 연락 텀이 미친 듯이 길다 – 친밀해질수록 연락을 피하고, 종종 잠수탄다.
✔ 미래 이야기를 피한다 – 결혼, 장래 계획 같은 화제는 돌려버리거나 이상한 농담으로 회피한다.
✔ 갈등을 피한다 – 서운함을 표현하면 묵묵부답. 다그쳐야 겨우 한 마디 한다.
⚠️ 나르시시스트 위험 신호 정리
✔ 여행은 도장깨기 – 하루 만에 다섯 도시를 돌며 피곤을 ‘트로피’로 여긴다.
✔ 대화는 자기 자랑 일색 – 첫 만남부터 몇 시간씩 자기 얘기만.
✔ 늘 세상이 문제 – “나는 대단한데, 회사/세상이 날 몰라준다”는 불평을 반복한다.
더 이상의 시간 낭비하는 회피형과 나르시시스트 피해자가 없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