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통장남

배달 시킬 때마다 은근 슬쩍 더 시켜서 본인 냉장고에 챙겨 넣던 남자

by 들송날송

그는 연하였다. 고작 한 살 차이였지만, 괜히 그 “연하남”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신선함이 있었다. 솔직히 그의 다소 가볍고 경솔해 보이는 언행 때문에 관계를 시작해도 될까 망설였지만, 그는 끊임없이 나에게 호감을 표현했다.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지고지순한 눈빛에 흔들린 건지… 결국 나는 연하남의 손을 잡고 말았다.


연애 시작 한 달쯤, 그는 돌연 “데이트 통장을 사용하는 게 어때?”라는 폭탄 발언을 던졌다. 호감 쌓는 단계에 통장 개설이라니? 순간 얼굴이 굳었지만, 매번 누가 내냐 눈치 보는 것도 피곤하니 데이트 통장을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겠다 싶어 덜컥 수락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본가에 살던 나와 달리 그는 자취를 했고, 데이트 통장은 어느새 ‘자취 식량 보급처’가 되어버렸다. 장을 볼 때면 은근슬쩍 장바구니에 더 집어넣고, 배달을 시키면 꼭 사이드 메뉴를 추가했다. 그리고 남은 음식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냉장고로 직행. 나는 그때만 해도 ‘뭐, 모자란 것보단 낫지. 사랑하는 사람인데 이 정도쯤이야~’ 하며 대범한 누나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정점은 자동차에서 터졌다. 나는 동생에게 타던 차를 넘기고 새로 살지 고민 중이었는데, 그는 본인 차를 같이 쓰자고 했다. “와, 고마워!”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곧장 이어진 한마디.
“그러니까… 남은 차 할부금은 같이 갚는 게 어때?”

순간, 머릿속에서 경적이 울리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별의 직접적인 이유는 다른 문제였지만, 시간이 지난 뒤 가장 아깝고 허무했던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연애에서 데이트 비용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각자의 노동의 대가를 상대에게 쓰며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별 과정은 마치 이혼 같았다. 감정적으로 힘든 와중에 데이트 통장에 남은 돈을 어떻게 정리할지까지 따져야 했으니. 사랑은 끝났는데, 통장은 여전히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그의 빈대력보다, 그런 걸 대범한 아량이라 착각했던 나의 기준 부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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