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형 가스라이터

나의 모든 것을 감시하던 CCTV 같던 그 남자

by 들송날송

가장 최근의 이야기다. 그는 통제광이었다. 나는 그게 사랑의 표현인 줄 알았다.


동호회에서 만난 그는 처음엔 전혀 이상한 사람 같지 않았다. 오히려 순하고 차분한 사람처럼 보였다. 대화도 술술 이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척척 맞장구를 쳐주길래 “이게 운명인가?” 싶었다. 다만 가끔 매끄럽지 못한 말투에 허세가 느껴졌지만, 그 정도는 귀여운 오버쯤으로 넘겼다.


연애 초반은 달콤했다. 퇴근길에 불쑥 찾아오고, 다른 남자가 나와 같은 건물에 들어가기만 해도 바로 전화를 걸어 “괜찮아?” 묻던 모습. 나와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함께 보내려던 모습. 전남친의 잠수 패턴에 지쳐 있던 나로서는 이런 집요한 관심이 오히려 안정감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 관심이 점점 감시로 바뀌어갔다는 거다. 집에 놀러오면 내 방을 스캔하듯 둘러보고, 책상 위 메모를 보며 “이건 뭐야?” 캐묻기도 했다. 별 의미 없는 유튜브 기록이었는데도 “너는 왜 이렇게 확신이 없어? 이런 걸 보면서 불안해하는 거 아니야?”라며 설교를 늘어놨다. 게다가 내 친구들까지 싸잡아 “네 주변 사람들이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 맞을까?”라고 의심의 불씨를 뿌렸다. 뜨개질하고 독서에 관심이 많은 내 10년 지기 친구들이 뭐가 어쨌다고…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싸울 때는 더 가관이었다. 내가 의견을 내면 돌아오는 말은 늘 똑같았다.
“아니지. 그건 틀렸어.”
무엇을 말해도 틀렸다는 피드백을 들었고, 참다 못해 물었다.
“왜 오빠 말만 맞고, 내 말은 다 틀린 거야?”


결국 나는 우리 관계에 존중이 없다고 말하며 이별을 고했다. 헤어지고 나니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찼다가, 단숨에 모든 것이 증발해버린 기분이었다. 먹는 것, 입는 것까지 통제받던 기억이 스쳐갔다. 애초에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게 도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딴 걸 사랑이라 착각했던 걸까. 끝이 나고서야 내가 받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통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 04화심리적 바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