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으세요?

by 들송날송

상담실에 들어가 앉아 끄적였던 메모들은 전부 모호한 감정들이었다. 헤어진 연인들에게 이용당했다는 느낌, 회사에서 끊임없이 소모되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엄마와의 반복되는 갈등.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조용히 물었다. “그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먼저 나눠보고 싶으세요?” 망설이던 나는 당시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히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남자친구는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미래에 대한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는 푸념을 한참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이 물었다. “사귄 지 아직 6개월도 안 됐는데, 왜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으세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그저 다들 하니까, 주변에서 하라고 하니까, 나이도 있으니까. 기회가 하루하루 사라지는 것 같다는 막연한 조급함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자연스럽게, 잠수이별을 했던 전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그와의 이별은 여전히 마음속에 파편처럼 남아 있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에게 프로포즈할 거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결혼이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장난으로 흘리거나, 엉뚱한 이야기로 넘어가곤 했다. 그때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결혼이라는 게 원래 어려운 문제니까. 대화를 피할 수도 있지. 마치 수행하듯,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넘어갔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가 원하는 것들을 최대한 들어주려 애썼다. 마치 내가 ‘좋은 아내감’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해야 하는 사람처럼. 일로 인한 끝없는 푸념도, 내 체력과는 맞지 않는 여행 방식도, 솔직히 말하면 피곤한 순간들까지 웬만하면 다 감내하려 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우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은 제대로 해보면 좋겠다”라는 내 메시지에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사라졌다. 잠수이별을 당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그 일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슬픔보다는 내가 속았다는 느낌, 이용당했다는 감정이 더 컸다. 그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다음 관계들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TCI 검사 : 기질과 성격에 대한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