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선생님을 만나 처음으로 했던 것은 TCI 검사였다.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을 함께 살펴보는 검사라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나는 조급했다. 빨리 내 문제를 쏟아내고 상담을 받고, 주어진 8회기 상담 안에 모든 걸 극복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속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이걸 왜 하지? 지금 당장 고민과 힘든 이야기를 털어놔도 모자랄 판에.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검사는 나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TCI 검사지가 나에게 건넨 한 문장은 이랬다.
“타인의 감정과 관계에 과도하게 민감하고 헌신적이지만,
자기 주도성과 자기 신뢰가 낮아 스스로를 소모시키기 쉬운 유형.”
묘하게 반박할 수 없었다. 특히 눈에 들어왔던 건 타고난 민감도가 100이라는 점이었다. 타인의 반응과 감정에 극도로 민감한 기질, 여기에 자율성이 낮은 성향이 더해지면 삶의 주도권을 타인이나 관계, 환경에 넘기기 쉬워진다고 했다. 게다가 인내력도 낮은 편이라 참고 버티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르기 쉽다고.
그제야 이해가 됐다. 왜 나는 회사에서 늘 내 일을 뒤로 미루고 남의 부탁과 의견을 먼저 챙기다가 결국 쉽게 소진되었는지. 왜 “괜찮다”는 말을 그렇게 습관적으로 하면서도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었는지.
이런 특성은 연애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남자친구의 답장이 조금만 늦어져도, 말투가 살짝 단답이 되어도
나는 쉽게 그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불안해졌고, 조급해졌고, 그 모든 상황을 결국 내 탓으로 돌렸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TCI 검사는 그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꿔주었다. 문제는 내가 유난히 예민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기질과 성향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 채 꽤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는 것.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이해와 동시에, 잠깐의 절망이 찾아왔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나를 소모하면서까지 맞춰주는 삶이 운명인 걸까. 이 기질을 가진 나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역할에만 어울리는 사람일까. 심지어 업을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그때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어서 크게 바꾸기 어렵지만, 성격은 후천적으로 충분히 만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그 말은 나를 안심시키기보다는, 이상하게도 책임을 돌려주는 말처럼 들렸다.
바꿀 수 없다는 선언이 아니라, 어디까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