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랑
그곳은 안녕하니?
나는 너무 잘 지내.
그곳이 그리워, 다시 한번 더 가고 싶다.
물론 네가 그리운 게 아니고, 네 뒤의 배경이 그리워.
아무튼 모쪼록 잘 지내렴.
나는 너보다 항상 잘 지내니까 걱정 말고.
[세계 곳곳의 썸들에게]
P.S - Rest in Peace
'여행뽕에 취한다'는 말이 있다.
여행뽕은 여행과 뽕의 합성어로, '여행의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취한다'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이 여행뽕을 조심하라고, 세상의 모든 어린이와 자라나는 십 대, 그리고 이 세계의 희망인 이십 대 초입에 서 있는 분들에게 강력히 이야기하려 한다.
'이 언니 겸 누나 겸 이모가 조언할게, 제발 여행뽕 조심하려무나. PLZ'
이십 대 초입에 나는 한 멋진 도시에 있었다. 그곳에서 운 좋게도 현지에 사는 또래 친구 무리들과 친해져 여행 내내 자주 만났다. 이방인인 나에게 그 친구들은 차를 태워 멋진 곳에 데려가고 맛있는 걸 사주고(맛집에 데려가다니! 지금 생각해도 이건 관심의 표시이건만!) 그랬다. 본투비 과몰입러인 나는, 친절한(좋아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과의 먼 미래까지 상상하느라 며칠 밤을 새웠다. 나이스한 매너에 둘러싸여 있으니 피곤하지도 않았다.
'아, 가족들과 떨어져서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따흑 나를 그렇게 한꺼번에 좋아하면 어쩌자는 거야.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부정맥인가.' 하며 과몰입병 말기가 되어 갈 즈음, 친절한 누군가 와서 잔인하게 말해줬다.
'이 애들은 모두 네가 아닌 네 옆의 친구를 짝사랑하고 있어. 그래서 너에게 잘해주는 거야. 그 애한테 잘 보이려고.'
Rest in peace 망할 과몰입.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상처받은 사람만 남아있었다. 부끄러움, 책망과 질투에 휩싸여 며칠 더 날을 새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4킬로가 빠져있었더랬다. 그런 걸 보면 여행지에서의 사랑은 다이어트에 좋은걸 까나. 다이어트를 하려거든 여행을 가시오. 가서 사랑에 빠지시오.라고 글을 마치면 될까나.
지금 생각하면 그들이 내가 아닌, 내 옆의 친구를 좋아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수단으로 쓴 것이 괘씸하긴 하다만, 쌍방이 아닌 마음이었기에 쉽게 접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 돌아와서도 짝사랑의 후폭풍이 있었지만, 머리가 커가면서 든 생각은 그 아름다운 곳에 흑역사를 남기지 않고 온 것이 참 다행이라는 것이다. 훗날 부끄러움 없이 그들과 그곳을 마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시간이 쌓인 만큼의 경험이 쌓여, 그 귀여운 마음은 여러 행行갈피 중 하나가 되었다. 귀여운 행갈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아마 이후의 경험들 덕분일 것이다.
수개월 후 나는 다른 곳으로 떠났고 이번엔 단방향이 아닌 양방향 사랑을 했다. 무더웠던 여행지의 온도를 닮은 사랑이었다. 아니, 사랑이라기보다는 마음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사랑을 잘 모르면서 분위기에 취해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랑하지 않으니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뱉어야 한다는 몹쓸 책임감이 들었고, 쉽게 내뱉은 책임감 뒤에 죄책감이 따라 들어왔다.
여행은 모든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람도 관계도 모두. 그런 것은 인천공항이라는 일상에 도착하면 모두 사라진다. 이제는 허상이 된 것들과의 대비만이 있을 뿐이다.
얼마 되지 않아 그 관계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사랑하지 않았다고 썼지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랫동안 극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 경험은 다음 여행도, 다다음 여행도 모두 부정해 놓았다. 자꾸만 그 기억은 개조했다, 여행이 아닌 도망으로.
그렇게 도망친 곳이 하필이면 절애였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비로소 나는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야속하게도 여행은 모든 것을 찬란하게 만들어주고서 짧은 시간 안에 선택하기를 종용한다.
여행에서의 어떤 마음은 귀여운 행갈피가 되기도 하고, 어떤 마음은 소슬한 상흔이 되기도 한다.
여행은 제시하고 나는 선택한다, 그뿐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여행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