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뉴욕의 관계

여행과 운동

by 정주구


누군가 가장 중요한 여행 준비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체력'이요.


이 두 번째 문장에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재수 없는 소리를 들은 양, 'X' 내지는 '뒤로 가기'를 연타할 것이다. 잠시만 기다리시라.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해 줄 테니 말이다.




'아- 운동을 해야 하니 슬슬 여행을 가야겠다-'하고 또 다른 여행을 앞둔 요즘, 나는 생각한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 필수불가결한 것은 건강이고 그 목적을 위한 가장 큰 수단은 운동이라고, 세상의 수많은 의사 선생님들(안 친함), 친애하는 어머니(아버지는 예외), 집 바로 앞에 있는 야외 테니스장의 새벽반 친구들(친구들아 고마워, 알람이 필요 없단다), 일 년에 두 번 보지만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만 같은 친척들, 알고리즘 지인인 김종국 씨(당연히 안 친함), 다년간의 요가 또는 필라테스로 감동적인 굴곡을 가진 친구들은 말한다.

운동은 힘들다. 당연하다. 움직이니 숨이 차고, 근육이 찢어져야 하니 아프고, 고통스럽다. 나는 그런 것들을 싫어한다.

게을러서 그런 거 아니냐고 의문을 가진 사람- 다 들리니 생각을 조금만 작게 해 주시길. 사실적시 또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니.


아무리 세상의 모든 것에 흥이 안나는 지독한 이별병에 걸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뉴욕의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들으면 움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영화 <나 홀로 집에>를 가까이했을 뿐 아니라 그 외의 명작인 <캐롤>과 <유브갓메일>을 접했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거대한 록펠러트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설레게 하는 것들은 충분하지만 그 무엇보다 '뉴욕'과 '크리스마스'라는 설레기로는 어디 뒤지지 않는 단어 둘의 조합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떠한 이미지를 연상할 것이라 생각한다.


2018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는 뉴욕에 있었다. 눈물 나게 재밌었던 첫 번째 미국 여행 이후 일 년 반 만의 미국행이라 설레어하는 게 맞는데, 의도치 않은 실연의 여파로 정신력이 흐트러져 있던 터라 그 여행이 다가올수록 현실감은 점점 떨어지고 방 안에서 홀로 침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신경이 온통 그 아이에게 있으니 텍사스를 가든 시카고를 가든 뉴욕을 가든 흥이 돋지 않았던 것이다.

한 칸짜리 자취방에 누워, 떨쳐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별의 늪에 빠져있는 동안 나의 근육은 점점 빠졌고, 이윽고 출국 이틀 전에는 몸살에 걸려 앓아 눕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8 미국행 일정은 이러했다. 텍사스에 있는 아버지의 지인의 지인(꽤 멀다. 아버지 친한 친구의 아들의 유학선생님 가족의 집. 완전히 남이다.)의 집에서 머물며 그곳에 지내는 하숙생들과 워싱턴 DC까지 로드트립을 떠났다가 혼자 뉴욕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고 텍사스에 돌아오는 것이다. 무려 텍사스에서 워싱턴 DC는 차로 왕복 4일이 걸린다. 물론 재미있는 기억이 많았지만 로드트립 내내 골골댔던 것이 아쉽다. 뿐만 아니라, 뉴욕에서는 완전히 혼자 있게 되며, 이별 후유증은 더욱 심해졌다.


이별병 말기 환자였던 나조차도 뉴욕에 도착하고서는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미 그 후유증으로 근손실이 꽤 진행된 터라 뉴욕에서도 '골골'을 면치 못했다. 게다가 뉴욕의 겨울 추위는 한국의 그것보다 날카롭고 매섭다. 설레는 마음과 다르게 아침에는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고 해는 빨리 지는 바람에 나갔다가 곧바로 들어오기 일쑤였다. 어둠을 피해 낙조에 끌려들어 오는 기분이란. 밤은 또 왜 이리 긴지. 완벽한 이방인이 된 그 호스텔의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외로움을 동반한 무서움을 느꼈고 한국의 내 방인지 뉴욕의 호스텔인지 모를 곳에서 나는 끊임없이 침대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근손실의 위험성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아니 이별의 무서움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둘 다 여행에 비협조적인 준비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후로 여행을 갈 때 체력을 우선으로 준비했다. 떠나기 몇 주 전부터 땀을 흘리는 전신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니 입맛이 돌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 기세로 여행 가방을 싸고 공항에 도착하는 기분이란. 그 희열감을 느낀 후로 캐리어에 가장 먼저 넣는 준비물은 체력이 되었다.


몇 달 전의 유럽여행 이후로 나의 복근은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굳이 이별이 아니어도 나이가 드니 숨만 쉬어도 근손실이 일어난다. 세월이란. 아무래도 건강이 최고니, 운동을 하는 게 좋겠지.

물렁해진 배를 부여잡으며 나는 이렇게 읊조리는 것이다.


'아- 운동해야 하니 슬슬 짐을 싸야겠구먼-'




<사진> 뉴욕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