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한식
해외여행 가서 누가 촌스럽게 한식 먹니? 누가 라면 먹어?
라며 가오를 잡았던 어린 날의 주구가 있었다. 그리고 여행 일수를 계산하며 라면 판매대 앞에 서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금의 주구가 있다.
참깨라면의 고소함도 좋지만 역시 신라면이 최고지. 아 근데 혈중 마라 농도가 떨어지면 큰일인데! 마라탕면도 챙겨야겠다. 이런이런 튀김우동이 애처롭게 쳐다보네.. 에라 모르겠다 다 사가자!
작가 겸 백수 겸 여행자 겸 식도락가인 필자는 뼛속까지 한식 파다. 푹 찌르면 피 대신 김치국물이 나올 것 같달까. 심지어 개중에서도 젓갈향이 풍기는 남도 밥상을 가장 좋아한다. 이런 애국자의 면모를 인정하기까지 깊은 고심을 했고, 이제야 나는 선포하는 것이다.
나이 먹고 가는 컵라면 없는 해외여행은 식고문이 따로 없더라-
여행지에서의 많은 밤을 ‘김치찌개 먹방’, ‘마라탕 먹방’, ‘한식 먹방’을 감상하며 보냈고 맥주를 마실 때면 빈 속에 술만 들이켜거나 딱히 특별하지 않은 'lays' 감자칩을 먹어댔다.
여행 갈 때 컵라면이 필요하지 않은 쿨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딱 한 번의 여행에서만이라도 글로벌한 입맛을 가져보고 싶다. 컵라면을 욱여넣기 위해 몇 벌 없는 옷 마저 빼내는 순간은 더 이상 가지고 싶지 않다.
여행자로서 실격인 걸까나- 하는 생각을 하며 몇 가지 기억이 가지는 풍미를 되새김질한다.
스무 살에 갔던 엘에이에서의 첫 음식은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이다. 늦은 저녁, 여행 첫날 친해진 처음 보는 현지 친구들과 먹었던 쌀국수가 그 기억의 주인공이다. 일단 거대한 대륙 아니랄까 봐 세숫대야 같은 거대한 실루엣에 한번, 그리고 흰 가루의 인심에 두 번 놀랐다.
짰다. 바다에서 놀다가 실수로 입에 들어온 바닷물 같은 짠기였다. 정말로 실수의 맛이었다. 가루 아끼는 집은 망한다던데, 그래서 미국이 잘 나가나? 하는 생각, 다음으로는 이거 뭔가 잘못됐는데, 인종차별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것만 그러나 싶어 친구들 것도 먹어봤는데, 놀랍게도 같은 맛이었다. 내 반응이 익숙한 듯 친구들은 설명했다. 미국은 원래 짜- 설명 끝.
가뜩이나 음식도 짠데, 돌아오는 대답 또한 짰다.
엘에이의 음식은 내 통장잔고처럼 짜거나, 치아가 시리게 달거나, 왕년의 디즈니 왕자처럼 느끼하거나 셋 중 하나였다. 매 식사시간마다 강제로 소식가가 되어 밥상머리 교육을 덜 받은 것처럼 깨작거렸고 그 여파로 여행 3주 동안 4킬로나 감량하게 되어 얼떨떨하게 잠시 이중턱과 이별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잠시'의 이별이었다는 후문.
다른 나라의 사정도 비슷하다. 파리는 미식의 나라인가? 로맨스의 나라인가? 아니 버터의 나라다. 모든 음식에서 버터가 뚝뚝 떨어졌다. 악명 높은 파리 종업원의 까칠함과 대비를 이루는 느끼한 풍미가 인상 깊었다. 이모님 여기 김치 리필이요-라며 그 까칠한 표정들에 보란 듯이 외치고 싶었다.
스페인의 파에야는 한국 해물탕에 밥을 말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나마 괜찮았지만, 역시나 한국의 쑥갓과 미나리, 시원한 무 토핑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열하고 보니 꽤나 까다로운 것 같아 머쓱하다. 토종 한국인의 혀를 가진 여행자 겸 식도락가의 푸념으로 받아주시길.
간신히 컵라면으로 혈중 한국인 농도를 유지하다가, 집에 도착해서 김치찌개 수액을 투약하면 비로소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이 까다로운 입맛은 나를 아예 떠나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제어장치라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에서 표류하다가 결국은 이것을 빌미로 어딘가로 돌아가게 되며, 다시금 배를 채우고 짐을 꾸리는 것이다.
회귀의 핑계이자 구실인 걸로 하자.
나 밥 먹으려고 돌아왔어-
하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