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산인과 쉼의 관계

여행과 산

by 정주구



누군가 산이 좋으냐 바다가 좋으냐 물으면 나는 쉽지 않게 산이 좋다고 대답한다.

다음 날 또 물으면 나는 쉽게 바다가 좋다고 대답한다. 뭐가 더 좋은지 결정하기 위해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좋은 것은 많을수록 좋지만 싫은 것을 헤아리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나 여행만큼은 말이다. 안 그래도 좁은 그릇이 더욱 좁아지는 건 사절이다.




나는 모태산인山人이다. 모태신앙과 같다. 부모님의 기호를 따라간 것이다. 부모님은 신실한 산인이시다. 자식들이 모두 독립하고 나서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산으로 나가셨다. 마치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잡혀있는 사람처럼 주말만 되면 초록이 있는 곳으로 떠나신다. 잦은 캠핑을 넘어 백두대간 종주까지도 하시는 모습은 신앙심 깊은 종교인과 비슷하다.


캠핑을 시작부터 끝까지 땀의 홍수로 이루어져 있다. 무거운 짐을 차에서부터 캠핑지까지 몇 번을 나르고는 텐트와 타프를 치기 시작하는데 그건 또 얼마나 복잡한지, 텐트를 다 치고 나서는 자잘한 짐 정리까지 이어진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날것의 캠핑장일수록 샤워실 시설이 열악해서 씻으면서도 여간 찝찝한 게 아니다. 물론, 이 모든 고생은 전적으로 아버지가 하신다. 나는 그저 옆에서 우물쭈물 대며 회사에 갓 들어온 신입의 모습을 하는 게 다 일 뿐이다. 신실한 산인 앞에 어린 산인은 지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고생을 두고, 한번 물은 적이 있다.


"왜 아버지, 어머니는 휴가 때마다 캠핑을 하시는 거예요? 쉼이 목적인데 너무 고생하시지 않나요. 힘쓰고 땀 흘리고 말이에요."


"그렇지 고생스럽지. 하지만 초록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자연 안에서 사는 게 우리에겐 쉼이야."


나도 자연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부모님의 산을 향한 애정도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자연이 쉼이다-라는 가훈보다 더 가훈 같은 도덕관을 받아들여 모태산인이 된 나는 역시나 나무와 흙을 좋아한다.

단단한 것에 의지하여 성근이 흔들리는 초록을 좋아한다.

깊숙이 성장하는 뿌리를 선망하고 그것의 안정을 흠모한다.

그들의 체취를 즐긴다.

그리고 그 체취가 몸을 휘감는 감각을 반가워한다.




모태산인인 나는 산을 좋아한다. 그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직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고 느껴지니 말이다.


라고 어린 산인은 생각한다. 어린 상태여도 나는 좋다. 한 가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를 좋아하고 느낄 수 있는 지금이 나는 좋다.


나는 산과 함께 잘- 산다.




<사진> 숲